우리가 몸의 느낌으로 계절을 아는 것처럼 인생의 계절도 몸의 변화로 먼저 실감한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그러나 사람마다 차이가 워낙 크고 다른 것이 몸의 변화이다. 사실 노화란 몸의 변화는 물론이고 그 변화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에 따라서 정의된다. 세상이 노화를 추하게 보면 추해지고 성숙함이라고 보면 성숙함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와 정치, 문화는 세상의 모든 노화를 노인의 것으로 한정한다. 그리고 모두의 노화를 같은 것으로 보아 한꺼번에 다루려고 한다. 그러나 너와 나와 그의 노화가 같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아름다운 ‘나이 듦’을 맞이하려면 노화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정의와 관습적 인식에 마주 서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길들어 온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노화를 진중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물론 아름다운 ‘나이 듦’이 신중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와 함께 사회 구조와 문화가 지속해서 건강한 노화를 지향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 글에서는 아름다운 나이 듦을 위한 신중년의 과제를 살펴보려 한다.
▲ 노년은 더 큰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 pixabay
노년은 훨씬 큰 가능성
우리는 누구나 늙어가지만, 나이 듦을 제대로 상상하지 않고 준비할 여유도 없다. 그러나 절망할 것 없다. 나이 듦에 대한 상상과 준비가 부족한 만큼 이제부터 해야 할 일도 많고 성취할 것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놓인 노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가능성을 가진 시기라고 보아도 좋겠다. 그 가능성을 상상하며 우리 앞에 놓인 과제를 살펴보자.
첫 과제, ‘나이 듦’ 배우기
나이 듦을 준비하는 첫 번째 과제는 시간과 마주 서서 나이 듦을 배우는 것이다.
나이 듦을 배운다는 것은 먼저 신체적, 물리적 변화를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사회적으로 나이 듦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다루어왔는지를 들여다보아 깨닫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이 듦은 사회적 개념과 제도 그리고 문화적 환경에 따라 결정되어왔다. 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이고 부정적인 통념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다음 노화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다루기로 하고 지금은 최근 대두되고 있는 노화에 대한 개념들 몇 가지를 훑어보기로 하자. 그렇게 하면 노화를 대하는 사회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가늠하게 될 것이다.
그 첫 개념은 ‘성공적인 노화’이다.
이 개념은 노화를 질병의 시기로 자리매김하는 통념에 반대한다. 그리고 노년의 잠재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긍정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후의 복잡다단한 인생 여정을 수치로 서열을 매겨 줄 세우는 위험도 안고 있다. 경쟁 어휘인 ‘성공’은 나이 듦을 표현하기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성공을 위해 내몰리는 노년의 모습은 참으로 상상하기 싫다.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개념이 ‘생산적인 노화’이다. 노년을 경제적 유용성으로 보아 사회제도 안에 머물도록 하려는 개념이다. 이것도 일견 바람직한 개념이다. 그러나 이는 노년을 일반화하지는 않는 대신 노화란 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다는 시선을 포함하고 있어 적잖이 염려스럽다.
다른 하나의 개념은 노년을 식민화된 층으로 여기는 것이다. 일종의 나이 차별주의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노년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부당한 대우를 담고 있고 더 나아가 노인의 비인간화를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나이 듦에 대한 근간의 사회적 개념들도 하나같이 완전하지 않다. 그뿐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의 위험을 안고 있어 반드시 보완과 개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나이 듦을 배우는 첫 번째 과제로 우리 몸의 노화와 나이 듦에 대한 사회적 개념들을 살펴보았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나이 듦의 시작은 먼저 깨어있는 의식으로 우리 노화와 노화에 대한 세간의 개념들을 마주하여 바라보는 데서 비롯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하겠다.
두 번째 과제, ‘나이 듦’에 대한 수치심 버리기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두 번째 과제는 노화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우리 생각을 바꾸어 노년과 노화에 대한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인식을 떨쳐버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세상은 쇠락과 상실이 노화의 핵심적인 특징이라 규정한다. 그리고 노화에는 세상의 문화에서 벗어나 소외되고 도태되는 현상이 뒤따른다는 오해를 퍼뜨려왔다. 그동안 신중년은 자신의 노화에 대해 사회가 옷 입힌 관념에 순응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노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수치심부터 버려야 한다. 그래야 노후가 당당하고 즐거울 수 있다. 노년은 그저 삶의 주기 중 일부다. 그러니 수치스러워할 이유가 없다. 인생의 말년이란 스스로 충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시간이라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다만 젊은이 코스프레를 통해 노년의 수치를 벗어나려는 시도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연스러운 노화를 만끽하는 것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노년을 살 수 있다.
▲ 나이 차별주의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 pexels
세 번째 과제, 나이 차별주의 극복하기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가장 큰 과제는 나이 차별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나이 차별주의에는 노년을 차별하여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있다. 그 첫 번째가 노화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노화에 대한 고정관념은 세상의 모든 삶을 늙음과 젊음의 이분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늙음이란 가치 없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노인을 무능, 가난, 신체적 결함, 소외자, 이기적 존재, 경제를 좀먹는 존재, 문화적으로 고립된 존재, 삐딱하게 꼬인 사람, 신세대 부적응자, 세상살이에서 심각하게 훼손되어 심술궂어지고 까다로우며 우울해진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느린 말투로 단순한 문장 구조와 어휘를 반복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하지만 정작 그들이 노년을 대할 때는 아랫사람 다루는 듯한 어투로 노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이런 생각과 태도가 현실을 반영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에 더 가까운 것은 이런 고정관념이 노년에 대한 차별을 담고 있으며 세상에 만연하여 노년을 지배한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노년을 바라보는 신중년은 노화를 대하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거부함으로써 나이 차별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우리가 극복할 두 번째 나이 차별주의는 외모지상주의다. 세상에는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친다. 그 속에서 노년의 외모는 추하고 꾀죄죄하다고 여겨진다. 신중년들조차 외모의 매력을 잃은 삶을 비극이라고 여기고 자기 모습을 자신 있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탓에 노인들은 한사코 사진 찍기를 마다한다. 하지만 뒷물에 앞서 바다로 향하는 강물을 추하다고 여길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 물은 여울과 골짜기를 흐르다 들판을 지나고 댐과 절벽을 만나 갇히고 쏟아져 내려온 물이다. 이윽고 넓고 평평한 하구에 이르러 유장하게 흐르며 제대로 하늘빛을 담아내는 살아있는 물이다. 그 여유와 포용이 오히려 아름답지 않은가.
다음으로 신중년이 극복해야 할 것은 신중년 안에 굳게 자리 잡은 나이 차별주의다. 젊은이가 노년이 되기까지 수십 년 동안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한 사람의 내면에 굳게 자리 잡는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평가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부당한 평가마저 합리화하여 받아들인다. 그러한 노년은 자존감과 동기부여, 위기 극복 능력과 신체적 능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를 부정하는 사람은 세상도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 안에 자리 잡은 나이 차별주의를 몰아낼 때 신중년은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극복해야 할 나이 차별주의는 늙음에 대한 일반적 통념이다. 일반적 통념은 고정관념으로까지 고착되지는 않았더라도 사회 구성원 다수가 당연하게 의식 속에 담고 있는 관념이다. 일단 늙었다고 판정받은 사람은 사회와 단절된다. 그리고 그들의 능력이나 지식 따위는 무시된다. 그러나 나이 듦은 긍정적인 면에서 성장을 계속하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이 듦을 세상이 규정한 정체성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자신의 나이 듦을 마주 보며 신체적 외모나 살아온 햇수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나이 들면 몸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건 인정하자. 하지만 나이 들어 세상과 단절되는 것이 당연하다고는 생각하지 말자. 비록 세상이 인정하지 않아도 자기 능력이나 지식을 값어치 없다고 여기지 말자. 자기를 존중하고 스스로 귀하게 여기자.
이제 신중년은 세상에 만연한 나이 차별주의를 날 선 눈으로 바라보아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름답게 나이 들 수 있다.
▲ 신중년은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 한다. ⓒ 50+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
여기까지 쓰고 보니 모든 신중년이 그동안 사회의 일방적 통념에 순응하며 살아온 것을 알겠다. 더욱이 날로 심각해지는 저출산과 급격하게 다가오는 초고령사회 속에서 신중년이 선 지형이 매우 위태롭다. 바로 지금, 사회 구조와 문화가 건강한 노화를 지향하며 충실한 논의를 계속하고, 신중년은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스스로 성찰하고 노력한다면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신중년은 다른 세상에 살지 않는다. 신중년이 위기를 극복하는 사회는 곧 모든 세대가 더불어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 사회의 신중년은 지금 행복해야 한다. 모든 세대가 누리는 삶의 방향은 언제나 행복을 지향하고 있으며 신중년은 삶의 한 주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노년에 대해 차별적이고 곡해 가득한 통념이 계속해서 자리 잡고, 사회적 논의가 건강한 노년을 지향하지 않는 한 노년을 향한 신중년의 행복한 삶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제 우리의 나이 듦을 마주하자. 우리 노년에 대한 수치심을 버리자. 그리고 사회의 부정적 통념과 정책을 거부함으로 스스로 삶의 가치를 되찾자. 그래서 지금 여기서 행복하자.
다음 글에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나이 듦을 위해서 신중년이 사회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역할을 담아보겠다.
50+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cbsanno@naver.com)
[슬기로운 신중년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