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남도 끝자락은 초등학교 6학년에서야 전기가 들어오고 21세기 4차 산업 시대임에도 지난해서야 비로소 상수도가 들어와 ‘괄괄괄’ 물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다고 그렇게 산간벽지에 오지는 아니다. 어느 곳에서도 5G 스마트 폰이 통하고 자동차보다 더 보기 힘든 비행기가 지나가는 모습을 하루에도 몇십 번 볼 수 있는 하늘 동네이다. 

 

도대체 어딘가 싶을 테지만 두 사람의 인물을 대면 금방 어디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 유배 생활을 했던 곳이고 해마다 5월이면 모란꽃을 노래하던 시인의 고향이다. 수많은 사람이 그곳에 살았지만 유독 그들의 이름이 오늘날도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유산의 가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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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 선생이 머문, 강진 사의재(四宜齋)

 

살아온 날에 대한 기록을 이력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력은 자기만의 소중한 기억이자 유산이다. 그러나 자기만의 이기적인 유산에서 역사와 사회 그리고 세대에 걸쳐 멋진 것을 남기고 간다면 그보다도 더 큰 유산은 없을 것이다. 나이 듦의 특권이자 의무 가운데 가장 귀한 선물은 바로 ‘욕심’을 덜어내는 ‘비움’, ‘증오’ 대신 ‘용서’, 눈앞의 ‘이익’이 아닌 ‘유산’이 아닐까 한다. 특히 지금, 나만의 아집이 아닌 다음 세대, 타인의 유익을 도모하려는 ‘유산’이야말로 50+들이 지녀야 할 최고의 가치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인 아웃도어용품 회사를 운영하는 미국 이본 쉬나드(83)의 선행은 기억할만한 유산의 본보기라 할 것이다. 그는 최근 무려 30억 달러, 우리 돈으로 4조 원이 넘는 돈을 지구를 위해 써달라고 기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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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븐 쉬나드 파타고니아 인코퍼레이티드의 설립자 ⓒ Patagonia Purpose Trus

 

그런데 그는 자서전적 고백에서 자신이 환경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바로 우리 땅에서 얻은 교훈이라고 한다. “나는 1960년대 초 주한 미군으로 근무하면서 보았던 한국의 농부로부터 지속이 가능한 경영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들은 자신의 논밭에 분뇨를 거름으로 뿌려 자신들이 물려받았을 때보다 더 나은 상태로 기름진 흙을 후손에게 물려줬다. 이 같은 유산(遺産)의 전승은 3천 년간 한국 땅에서 이어져 왔다”라고 적었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나 자신’이 혹은 ‘이곳’이 누군가의 전설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덤덤하게도 흙 속에 저 바람처럼 살아간다.

 

쉬나드는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이 있는 데도 하지 않는다면, 악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흔히 우리는 죄(罪)란 강도, 살인, 사기, 교만, 음란, 탐욕, 분노, 게으름, 시기심 등 도덕적인 타락을 의미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죄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무나 양심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바로 인색함이다.

 

인색함이란 타인의 소리나 손길을 외면하고 갇혀있는 마음으로 일종의 악(惡)이다. 그런데 ‘악(惡)’이란 한자를 파자해 보면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亞(버금)와 心(마음)이 합한 것으로 ‘亞’라는 단어의 상형은 ‘사방이 꽉 막힌 집’ 즉 ‘갇혀있는 마음’이다.

중국의 사상가 왕양명도 “알고서 하지 않는다면 모르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다.

 

철저한 자기관리에 건강과 행복을 유지하다가도 인생의 겨울을 만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사소하게나마 실망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어디쯤에서 넘어지게 되고, 그렇게 겨울은 조용히 삶 속으로 들어온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일종의 여름 같은 시기,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도 있지만 반대로 늦은 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블랙베리 윈터(Blackberry Winter), 우리식으로 셈하자면 꽃샘추위도 있다.

 

어떤 아름다운 것도 결국 이별을 해야 하기에 이 세상과 이별할 때 지금부터 잘 떠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계절이든, 인연이든, 일이든 이별할 때 미련 없이 보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커다란 물질이나 대작을 남기는 것도 대단한 유산이지만 늘 만나는 사람, 늘 하던 일, 늘 다니는 길목에서 작은 미소로 대하는 것도 나만의 작은 유산이 아닐까?

 

윤동주 시인의 가을 시(詩) 한 줄기를 나누자.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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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묻는 내 인생의 열매는?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yphwa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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