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획과 관련된 강의를 하다 보면 매번 빠짐없이 받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가족 여행 가면 매번 싸워요. 그래서 같이 여행 가는 것 서로 싫어하고, 어쩔 수 없이 같이 가면 대충 포기하고 맞추는데 강사님 부부는 여행 가면 뭐 하세요?'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항상 '저희도 별거 없습니다'이다. 하지만 이 대답에 만족해하는 질문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 더 집요하게 구체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데 이럴 경우 이렇게 대답한다. '별거 없지만 굳이 물으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부부는 여행 가면 걷기 좋은 길 찾아서 걷고, 예쁜 장소나 풍경 발견하면 사진 찍고, 저렴하고 깔끔한 식당에서 맛난 점심 먹고, 분위기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서점이나 소품점에 들러 문구류와 작은 기념품 쇼핑합니다. 그리고 사람들 많이 찾는 관광지는 사람 없는 시간대에 방문하거나 동선을 반대로 하여 조용하게 구경하고 저녁에 현지 생맥주 한잔하고, 시내 중심가 야경도 구경하고 깔끔한 시내 호텔에서 잡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왜 잘 안되죠?'라고 반문하기 마련이다.
별거 없는 여행지의 일상이지만 그 일상을 만든 과정까지 별거 없지는 않다. 별거 없는 평범한 여행을 위해서는 별거 있는 질문과 합의가 필요하다. 먼저 4가지 질문을 스스로 던져야 한다. 첫 번째 질문은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걷기 좋은 길을 걷고 예쁜 곳에서 풍경과 인물 사진을 찍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나는 어디에 있을 때 시간 가는 줄 모르는가?'이다. 내 대답은 서점이다. 세 번째 질문은 '나는 무엇을 할 때 두 번째로 행복한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이 바로 분위기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기다. 네 번째 질문은 '나는 어떤 상황이나 장소가 불편한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 많고 혼잡한 관광지와 줄 서서 기다리는 식당이다. 우리의 별거 없는 평범한 여행 일상은 이렇게 4가지 기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4가지 질문에 하나의 질문이 더 필요하다. 4가지 기본 질문에 각각 한 번씩 질문을 더 해야 한다. 그 질문은 '당신은 어때?"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반영하여 함께 여행 가는 일행, 동행에게 양보하고 배려하여 상호 합의를 보는 것이다. 오래된 현지 식당의 저렴한 현지 음식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불결하고 향기 강한 음식을 싫어하고 맛은 좀 덜해도 위생적이고 깔끔한 식당을 선호하는 아내를 배려한 것이 '저렴하고 깔끔한 식당에서의 맛난 점심'이다. 서점 구경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소품점 쇼핑 시간을 얻고 서점 구경을 양보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아내는 현지 생맥주를 좋아하는 필자를 위해작은 선술집에 동행한다. 대신 현지 빵이나 과자를 살 때 내 눈치를 보지 않는다. 유명한 관광지라 하더라도 사람이 너무 많아 복잡하고 혼란한 것은 다행히 아내도 나도 동시에 꺼리는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관광지는 사람이 덜한 시간대에 방문하거나 관광객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을 선택한다. 이러한 여행 동행자에 대한 배려와 양보가 필요한 이유는 행복한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동행자의 행복이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동행자에게 '당신은 어때?'라고 반드시 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몇 년 전 유럽 여행의 경험 때문이다. 프라하의 150년 된 낡은 아파트를 공유 숙박업체를 통해 예약하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4박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 도시로 떠나는 시간이 되어서야 아내가 '당신이 만족하고 즐거워해서 말을 못 했는데, 난 이 숙소는 냄새 때문에 별로였어요. 냄새 때문에 머리 아팠어요.'라고 말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동행자의 행복의 기준이 나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내에게 미안했다.
여행 기획에서 저지르기 쉬운 가장 큰 오류는 나만의 여행을 기획하는 것을 나만의 특별한 일정표를 만드는 것으로 오해하는 일이다. 여행사 직원의 여행 기획 최종 산출물이 일정표이기 때문에 DIY여행기획의 최종 산출물도 일정표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다. DIY 여행 기획의 최종 산출물은 나와 동행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To Do List'다. 무엇을 보고, 먹고, 즐기고, 체험할 때 행복한지 자신도 생각하고 동행자에게도 물어서 여행의 동행자 모두가 행복한 여행이 될 방법을 찾는 것이 DIY 여행 기획을 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더 많은 나라와 도시를 방문했다는 등정주의 여행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 더 행복해지고 동행자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등로주의 여행이 필요하다. 행복하지 않은 여행은 내 돈주고 떠나는 유배다. 반드시 행복해지는 여행을 만들기를 바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