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쓸모
삶과 일 그리고 쉼
▲ 일이 곧 삶이라면 쉼은 필수이다.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어떤 모양으로든 사람마다 일한다. 그 일이 생업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삶이 일이고 일이 곧 삶이랄 수 있지만, 이 두 가지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일은 도중에 놓거나 멈출 수 있지만 삶은 그럴 수 없다. 일을 쉬는 것은 삶을 쉬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 충만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휴가는 이렇게 일에서 놓여남이고 쉼이며 여유이고 기회이다.
일이 쉼을 부르고 쉼이 일을 밀도 있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밤, 잠이라는 쉼을 얻어 몸과 마음을 회복하여 기적처럼 아침을 맞이한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해온 대로 우리는 일주일마다 쉼을 갖는다. 이런 방식은 인간이 쉼을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는 공식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인생은 일주일보다 더 큰 주기를 가진다. 매월 단위로 끊어서 계획하고 일하고 정산한다. 그래서 어지간한 급여는 대부분 월급이다. 그보다 더 피부에 가까이 다가서는 주기는 계절이다. 사람의 몸과 정신은 환경을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니 몸이 견디기 어려운 계절에 쉼을 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현명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몸이 많이 지치는 혹서기에 휴가를 보낸다. 이렇게 삶의 주기를 따라 일하고 쉼을 가지므로 우리의 삶과 일과 쉼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의 쓸모
▲ 쉼을 뜻하는 한자 ‘쉴 휴(休)’는 사람이 나무 곁에 선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선지 우린 숲에서 편안함과 푸근함을 느낀다. 광릉숲길에서 만난 풍경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시간은 멈출 줄 모르고 흘러 지나가는 물리적 차원이다. 그 시간의 차원에서 우리는 여행자로 산다. 쉼 없이 다가와 끊임없이 현재가 되고 이내 잡을 수 없이 과거가 되는 시간 속 여행자로 산다. 휴가의 전제는 일에서 떠나는 시간이므로 휴가를 얻는다는 건 곧 시간을 얻는 것과 같다. 그래야 일에서 놓여날 수 있고 쉼과 여유를 가지며 충전이든 떠남이든 새로운 경험이든 일 바깥의 것들을 모색할 수 있다. 그래서 휴가의 쓸모란 곧 시간의 쓸모이기도 하다. 일손을 비우고 얻는 시간의 쓸모를 무엇이라고 정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또한, 우리는 삼차원의 몸을 가지고 공간을 이루며 살아간다. 일도 삶도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고 당연히 휴가 또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휴가의 쓸모란 시간뿐 아니라 공간의 쓸모이기도 하다. 공간 안에서 멈추어 쉬거나 다른 만남을 갖기도 한다. 익숙한 곳에서 진득한 쉼을 얻든 새로운 공간에서 철저하게 분리된 쉼과 생기 넘치는 경험을 즐기든 그 또한 각자의 몫이다.
휴가의 쓸모는 휴가를 쓰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일하면서 몸에 들어찬 피곤을 덜어내는 것. 일하느라 챙기지 못한 마음에 평안을 채워 넣는 것. 그렇게 나 자신과 화해하는 것. 느슨하고 멀어진 관계들을 회복하는 것. 새로운 만남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 내 삶의 본질을 다시 기억해내는 것, 그래서 즐겁고 행복하며 아름다운 삶을 회복하는 것 등이 아닐까 싶다.
중장년과 노년의 휴가
▲ 내려놓으므로 얻게 되는 쉼 속에서는 그동안 보지 못하던 것을 보는 행운도 종종 만날 수 있다. ‘동물원 옆 미술관’ 가는 길에서 만난 풍경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무거운 짐일수록 내려놓으면 더욱 편안해진다. 그래서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일터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중장년에게 휴가는 더 절실하고 휴가의 쓸모는 더욱 크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잠시 일손을 놓고 있거나 은퇴 다음의 삶을 사는 중장년과 노년에게도 휴가는 절박하다. 생업이 아닌 일로도 그들의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삶은 오뉴월 솜이불처럼 두껍고 숨 막히도록 힘겹기 때문이다. 거울 속 자신이 살아간다기보다 늙어간다고 느낀 어느 날 그냥 벗어나고 싶어진 이들에게 휴가는 숨통처럼 간절하다. 놓아버린 일손 탓에 오히려 삶의 무게가 나날이 더해가는 이들에게도 휴가는 참 요긴하다. 휴가는 편안한 것이고 쉬는 것이며 좋은 것이다. 놓여난 시간과 공간의 여백은 곧 기회이다. 휴가자 자신이 회복하는 기회이고 그가 타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성찰하는 기회이며 관계의 끈을 다잡는 기회이다. 그래서 나날이 외로움이 깊어가는 중장년과 노년에게도 휴가의 쓸모란 참으로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휴가의 쓸모를 곱씹다
▲천인에겐 천 가지, 만인에게 만 가지 휴가의 쓸모가 있다. 내 휴가의 쓸모는 가장 먼저 나 자신과 화해는 것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연초에 시간의 쓸모를 곱씹다가 한가지 변화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해마다 점점 빨라지는 시간을 올해는 조금 더 쓸모 있게 쓰고 싶어서 촘촘한 일 바깥의 모든 시간을 휴가 삼기로 했다. 그렇게 연중 시간의 쓸모가 곧 휴가의 쓸모가 되었고, 그중 가장 큰 쓸모는 나 자신과 화해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었다. 화해하자니 마음을 다해야만 했다. 그래서 휴가 동안 나를 위해 무얼 해줄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미루어두었던 것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 사용에 규칙을 두거나 틀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휴가를 담을 공간으로 멀고 가까운 곳과 익숙하고 새로운 곳을 가리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내 휴가는 짬짬이 곳곳에서 지금도 이어지는 중이다.
나를 위한 휴가
▲ 주말마다 얻는 휴가는 참으로 달콤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오가는 길과 미술관에서 만난 풍경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휴가 기간을 한여름으로 한정하지 않고 연중휴가처럼 모든 여유 시간을 휴가 삼기로 하자 휴가의 쓸모가 크게 늘었다.
먼저 4월부터 주말마다 세 시간씩 10주 동안 진행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 해설사 과정에 도전했다. 어렵기로 소문난 과정이지만 복되게도 기회를 얻었고 덕분에 주말 다큐멘터리 시청 시간을 휴가로 바꾸어 멋지게 사용했다. 주말 아침마다 전철역에서 동물원 옆 미술관까지 30여 분 봄꽃 길을 걸으며 오래전 그 길 위에 맑게 울리던 내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를 다시 들었다. 공부가 끝나면 숲속 미술관 안팎의 미술품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가슴까지 내려오는 감동을 즐겼다. 다시 30여 분 호수길을 걸어 나오며 뜻밖의 풍경을 사진에 담는 행운에 즐거워하기도 했다. 공부는 어려웠지만 재미있었고 새로웠으며, 머릿속에 미술 지도를 또렷이 그려나가는 성취감에 한껏 행복해졌다. 그리고 주말마다 즐긴 휴가의 덤으로 다른 이들에게 ‘미술 읽어주는 남자’로 살아갈 기회도 얻었다.
시간을 한정하지 않으니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았다.
관계보다 일이 앞섰던 직장 생활 뒤에 옛 동료들을 다시 만나 틈틈이 휴식 같은 휴가를 이어갔다. 그들과 평생 같이 일을 했지만 쉼을 같이 하지는 못했다. 그들과 쉼을 함께하니 같이 일할 때보다 그들이 더 소중해졌다. 그들과 함께하는 짤막짤막한 휴가 속에서 관계가 나를 다시 만드는 안온함을 누렸고 공감의 능력을 키워갔다. 기회를 얻는 대로 그들과 함께 자연과 역사 속으로 들어가 현타의 즐거움을 누렸다. 그들과 함께 바라보는 봄 바다는 이전보다 향긋했고, 그들과 함께 떠난 역사 여행은 선명했으며, 그들과 함께 걸은 여름 숲길은 바람 없는 날에도 그다지 더운 줄 몰랐다.
매주 금요일 오후는 정기휴가였다. 도심에서 반복되는 오전 일을 마친 오후에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보고 싶었던 것을 보고, 누리고 싶은 것들을 누렸다. 오래도록 잊고 있던 헌책방 뒤지는 즐거움도 되찾았다. 역사에 관심이 커서 조선의 다섯 궁궐을 찾아 해설사의 해설을 듣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경복궁과 경희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그리고 운현궁에 여러 차례 다녀왔다. 그러면서 궁궐 풍경과 내 눈 사이에 스마트폰 카메라 화면을 밀어 넣었다. 그랬더니 궁궐의 전각과 함께 거기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화면에 담겼다. 새 전각을 짓되 단청을 올리지 말라던 왕의 명령으로 생겨난 창덕궁 낙선재 권역의 아름다운 창호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고 거기 살던 사람들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와 비운의 삶을 생각했다. 지금은 솔밭이 된 창경궁 전각 터에 앉아 켜켜이 쌓인 역사 속 스토리텔링을 떠올렸다. 조선의 첫 법궁이었으나 오랜 시간 버려졌다가 재건된 직후 다시 망국으로 어지럽혀진 경복궁 회랑에서 굵은 장맛비를 오래도록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경복궁 길 건너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있다. 오랜 독재 정권이 무너지자 신군부가 군사 반란을 획책하고 모의한 현장이 이젠 현대미술의 요람이 되었다. 전시를 둘러보다가 미술관 뒤뜰로 나갔을 때 목백일홍이 붉게 피어있었고 이성복 시인의 시 ‘그 여름의 끝’ 가운데 한 줄이 생각났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피어났던 악하고 깊은 절망의 날을 몸서리치며 기억했다. 그리고 백일홍보다 짙었던 붉은 함성들을 기억했다. 그래서 이제는 끝난 우리의 절망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창덕궁 낙선재에서 만난 창호들. 매번 비우고 떠난 마음을 휴가는 번번이 이런 아름다움으로 채워주었다.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지금도 계속되는 휴가
휴가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일이 곧 삶이듯 휴가도 삶의 한 자락이다. 그러니 놓고, 떠나고, 쉬고, 비우고, 채우고, 만나고, 느끼고, 경험하고, 변화하고, 새롭게 되는 것 모두가 휴가이자 곧 삶의 모습이다. 다만 휴가에는 시간과 공간의 기회가 필요하다. 그래서 일정한 시기에 통으로 얻는 시간에 매달리지 않고 내게 허락된 조금씩의 시간을 휴가로 여기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한해는 휴가로 충만하다. 물론 여러 날이나 두어 달씩 걸리는 휴가가 필요하면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을 휴가로 여기며 얻는 유익은 긴 시간 휴가로 얻는 것에 비해 절대 작지 않다. 쪽 시간 휴가일지라도 떠날 때마다 마음을 가볍게 하여 흥분과 기대를 담고 간다. 휴가지에서 경이로운 새로움도 만나고, 오래 잊었던 이야기를 다시 건져 올리기도 한다. 몸과 정신은 충만해지고 다시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며 살 힘을 얻는다. 그렇게 내 휴가는 지금도 계속된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cbsann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