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소통, 소통을 위한 언어
사람이 모여 사는 모든 곳의 우선 과제는 항상 소통이다. 자연과 다른 생명체 앞에 나약한 사람은 서로 모여 인간을 이루지 않고는 생존할 수가 없었고 그러자니 소통은 필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생존의 수단으로 언어를 갖게 되었다. 먼저 몸짓과 표정으로 의사를 표시하고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입의 소리로 말을 만들어 의사소통했을 것이다. 그러고도 한참 뒤에야 문자를 통해 의사소통하며 그것을 기록하고 보관하게 되었다. 이 세 가지 소통 수단 모두를 우리는 언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소통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언어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담는 그릇이므로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언어는 서로가 공통된 의미를 갖기로 정한 약속이다. 그러므로 소통하려는 사람마다 언어에 충실해야 한다.
▲ 천 사람이 있는 곳엔 천 개의 언어가 존재한다. (출처 : Pixabay)
천 사람이 모인 자리엔 천 개의 언어가 존재한다.
현실적으로 같은 국어를 공유하는 집단과 민족, 나라 안에도 항상 소통보다는 불통이 더 많다. 거기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같은 언어권 안에도 구성원의 숫자만큼 개별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저마다 다른 생각과 마음을 품고 살면서 자기만의 언어를 매 순간 빚어내기 때문에 천 사람이 모인 자리엔 천 개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양이’가 어떤 동물인지는 다 알지만, 누구에게는 사랑스럽고 누구에게는 혐오스러울 수 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 ‘고양이’라는 단어 하나에서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읽어 공감대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는 소통은 충분하지 않고 때로는 불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언어는 생물과 같아서 잠시도 멈추어 서지 않는다. 쓰는 사람에 따라서 용도가 달라지고 새로 창출되거나 잊히고 사멸하기도 한다. 그러니 언어가 아무리 소통의 통로라고 해도 언어를 통해 소통하기란 참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 중장년의 언어소통이 어려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출처 : Pixabay)
중장년의 언어소통이 어려운 이유
일반적으로 중장년이 되면 몇 가지 원인으로 소통지수가 서서히 감소한다.
먼저 신체적 조건이 예전 같지 않은 탓에 상대의 언어를 잘 듣거나 보아 인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 안에서는 익숙한 언어조차 잊어 기억하지 못하는 적이 많다.
민감성이 떨어지면서 새롭게 탄생하거나 용도가 바뀐 언어를 바로 감지하지 못하고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며 응용력도 같이 저하되면서 혹 그런 언어를 알더라도 적절히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특별히 새로운 세대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신조어와 축약어 따위에 익숙하지 못함에 따라 세대 간의 틈을 더욱 크게 느끼고 그것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언어는 생물이므로 세상과 함께 진화한다. 특별히 기술의 발달과 거기 따라 생겨나는 용어와 그 뜻을 이해하기는 참으로 벅차다.
그러다 보니 소통 자체에 마음을 두지 않으려는 태도 변화로 이어져 중장년의 소통지수는 더욱 감소하게 된다.
중장년의 언어 소통력 이렇게 회복하고 키워가자
중장년이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족과 친구와 세상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된다. 이때 하락하는 소통지수를 끌어올리는 데는 언어 소통력만 한 것이 없다. 언어 소통력 기르기에는 딱 두 가지 단계가 있을 뿐이다. 첫째는 마음먹는 것이며 둘째는 노력하는 것이다.
▲ 언어소통의 시작은 마음먹기이다. (출처 : Pexels)
언어소통을 위해 마음먹기
언어소통을 위한 마음 먹기의 시작은 자신을 알고 상대를 아는 것이다. 전장에는 ‘지피지기 백전백승’의 법칙이 있고 언어소통에는 ‘지피지기 소통공감’의 법칙이 있다. 자기를 알고 상대를 앎으로써 원활한 소통을 이루고 나아가 공감에 이르게 된다는 법칙이다. 그러니 언어소통을 위해 현상을 타개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먼저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육체적 조건이 변화한 것과 그에 따라 언어 기능이 저하된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자기 생각과 언어가 어떤 모습인지 정면으로 마주 보아야 한다. 거울을 보아야 자기 모습을 아는 것처럼 먼저 자기 생각의 모습과 사고방식을 직시하고 깨달아야 한다.
그와 함께 변화에 대처하는 자기 태도도 돌아보아야 한다. 알아야 바로잡을 수 있다. 유연성과 민감성을 잃으면서 어느새 굳어진 관념과 태도를 제대로 보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자 절반이다.
모든 소통은 상대적이다. 그러니 말하기 전에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상대가 ‘내 말’을 듣고 이해하며 공감한다. 그래야 비로소 언어소통을 이룰 수 있다.
또한, 세상의 모든 방향에서 다가오는 스트레스에 눈과 귀를 막지 말고 움츠러들지 말아야 한다. 너그럽고 열린 마음으로 스트레스를 다스림으로써 스스로 소통의 장애물로 삼지 말아야 한다.
▲ 언어소통의 첫 단계는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이다. (출처 : Pexels)
언어소통을 위해 노력하기
언어소통의 과정은 준비와 표현의 과정이고 극복과 배움의 과정이다. 마음과 힘을 다하지 않으면 좀처럼 이룰 수 없는 과정이다. 언어의 네 가지 형태를 통해 알아보자.
첫째, 언어소통의 첫 단계는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임을 명심하자. 들어야 느끼고 알 수 있다. 그래야 생각할 수 있고 그래야 생각을 정리해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말하고 듣기’가 아니라 ‘듣고 말하기’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귀와 마음을 다해 듣는 경청은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로부터 존중을 돌려받음으로써 깊이 있는 소통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경청이란 부단히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언어능력이고 나이를 더할수록 더욱 경청에 힘써야 한다. 듣기보다 말하기를 즐기면 필시 ‘꼰대’의 늪에 빠지게 된다.
둘째, 먼저 생각하고 나중에 말하자. 세간에는 말하기 법칙과 기법이 숱하게 널려있다. 모두 유익한 것들이겠으나 근본적으로 언어소통지수를 높이려면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충분하게 생각한 뒤에 생각을 잘 정리해서 말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와 상황에 맞는 말을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익숙한 고정관념과 인습에 따라 말하기를 계속한다면 소통에서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셋째, 자기 생각과 말법 향상을 위해 노력하자. 자기 생각과 말법을 아는 최고의 방법은 글로 생각을 적고 소리 내 읽어 보는 것이다. 소리 내 읽어 보아 거침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다면 문장 구성과 문법이 매끄러운 것이고, 상대의 관점에서 읽어 보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자기 생각이 제대로 표현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것이고 문장력 등 언어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다시 쓰거나 몇 번이고 고쳐 써야 한다. 자신에게도 이해와 표현이 어려운 글과 말은 상대에겐 더욱 그렇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넷째, 낭독으로 언어 소통력을 높이자. 낭독은 글을 소리 내 읽는 언어 행위이다. 문장 이해력과 발성, 발음, 속도, 어감, 어조 등 음성 표현력을 기르기에 매우 적절하다. 그리고 낭독 자체로 자신과 타인을 위로, 소통, 공감에 이르게 하는 지름길이다. 직업적으로 언어훈련을 하는 사람도 낭독을 통해서 언어소통 목표에 다가선다. 이해와 표현이 쉬운 좋은 글을 골라서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낭독 연습하기를 권한다.
▲ 좋은 언어 소통력을 갖기 이해서는 먼저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 (출처 : Pexels)
이제 이렇게 해보자
첫째, 어느 자리에 가든지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힘쓰면서 대화하자. 말하기보다 듣기에 힘쓰고 ‘말하기 1/n 법칙’을 지키자. 즉 셋이서 30분 동안 대화한다면 혼자 말하는 시간이 모두 10분을 넘지 않도록 하자.
둘째, 대화와 모임 자리를 피하지 말자. 그래야 언어와 관계를 잃지 않는다.
셋째, 매일 포털 기사를 고루 열람하자. 그렇게 시대 조류를 알고 균형감 있게 시대 감각을 키우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화의 소재 곳간도 풍부하게 채울 수 있다.
넷째, 새로운 언어에 익숙해지자. 언어는 세태를 따라 진화하므로 새로운 언어에 둔감하면 세상 물정에 어둡게 되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매일 신조어 사전에서 단어 하나씩만 용례와 함께 읽어두자. ‘엣지’있는 감각적 언어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다섯째, 첨단 기술을 익히는 데도 힘쓰자. 기술의 발달은 곧장 삶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스마트폰, 컴퓨터, 메신저 앱, 키오스크 등에 어두우면 삶이 어둡고 불편하며 세상과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
여섯째, 매일 글을 쓰자. 일기도 좋고 독후감도 좋다. 글이 길지 않아도 좋고 두어 줄에 그쳐도 충분하다. 언어력은 매일 달라지고 소통력은 상승할 것이다.
일곱째, 매일 낭독하자. 긴 글 긴 시간이 아니어도 좋다. 짧은 시를 골라도 되고 계절 감각에 맞는 수필을 찾아 읽거나 단편 소설을 발췌해 읽어도 된다. 작가의 생각과 관념을 배우고 어휘력 등 언어력도 기를 수 있다. 그러면서 얻는 자기 격려와 위로의 힘은 원래 목적을 넘어서는 덤이다.
▲ 이해하고 노력하면서 언어소통의 힘을 기르면 중장년 모두 삶 속에서 원활하게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다. (출처 : Pixabay)
글을 맺으며
언어에 대한 세 가지 오해가 항간에 퍼져있다. 언어는 매일 익숙하게 쓰는 것이니 굳이 배우려고 노력할 것 없다거나 말 잘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으니 노력한다고 좋아질 리가 없다는 생각 그리고 언어력은 기법이나 요령만으로 충분하다는 오해가 그것이다. 여기 대한 답은 간단하다. 언어력이야말로 노력한 만큼 어김없이 좋아지는 능력이다. 그리고 노력하지 않는 천재보다 마음과 힘을 다해 노력하는 범재가 훨씬 나은 소통을 이룬다. 그러니 이해하고 노력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언어소통의 힘을 기르면 중장년 모두 삶 속에서 원활하게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렇게 우리 시대 중장년 모두 삶의 질을 높여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