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이라는 나이에 익숙한 내가 마흔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다는 그녀(박진영 작가)를 만난 것은 올해 운영을 맡은 호락호락문화놀이터(서부캠퍼스 1층
모두의 카페에서 진행하는) 북토크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춤꾼이자 출간작가였는데 첫 만남부터 충격이었다.
4시부터 하게 될 프로그램을 3시도 안 된 시간에 와 있는, 그것도 몸에 딱 붙는 까만 기능성(요가복으로 보이는) 티셔츠에 빨간 나이키 로고가 선명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뭔가에 집중하던 단발머리 학생(내가 본 첫 인상은 그랬다)이 오늘 하게 될 북토크의 주인공이라는 걸 어찌 알았으랴.
▲ 수줍은 모습 어디에 마흔의 세월이 있을까 ⓒ 홍보서포터즈 정용자
굳이 이유를 대자면 하필 일정이 분주해 운영자로서 사전정보가 부족한 탓도 컸다. 마흔에 접어들었다는 것과 춤꾼이라는 것과 우즈베키스탄을 다녀와 책을 냈다는 것 정도가 그녀(만나기 전까지 그라고 믿었던)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한 치의 고민 없이 만나기 전 남자 분이겠거니 했다.
지금 생각하니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진영이 왜 남자이름일 거라 생각했을까?
공부해서 판, 검사가 되라는 부모의 기대치를 알면서 춤을 택한 그녀는 부모님 몰래 무용입시를 준비해 단국대 무용과를 거쳐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현대
무용을 전공했다. 이후 무용수로 공연을 하며 춤판이 요구하는 기준과 틀에 맞춰 사느라 고군분투하다 마흔을 앞두고 생계형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뒤 회의감이 들어 우즈베키스탄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작가소개에 썼다.
▲ 당당하고 자유로운 마흔 ⓒ 홍보서포터즈 정용자
▲ 홀린 듯 이어지던 춤 ⓒ 홍보서포터즈 정용자
여행을 마친 그녀가 그 시간을 정리한 글이 오늘 풀어놓을 책 『그래서 실크로드』였다. 첫 만남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두 번째 충격은 모두의카페 앞 탁자
몇 개를 뒤로 밀고 즉석무대를 만든, 그 무대에서 맨발로 춤을 추던 그녀의, 공간과 하나가 된 듯 자연스럽던 모습이었다.
육십의 입장에선 고작 마흔인 그녀가 저렇게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마치 무언가 가려진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느낌이랄까?
좋아하는 춤을 추다 마흔이 되었다는 그녀, 마흔엔 뭐라도 될 줄 알았다는 그녀, 막상 되어보니 여전히 나아가지 못하고 생계형 무용수로 살아가고 있어
좌절했다는 그녀가 눈앞에서 혼신의 힘으로, 그러나 솜털처럼 가볍게 춤을 추고 있었다. 고작 마흔 나이에 저토록 간절히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니 육십의 여자에겐 놀라운 충격이었다. 나의 마흔이 생각났다. 희망이 없을 것 같은 나이. 마흔은 그냥 사는 나이라고 생각했던 서른 후반 나의 절망도 떠올랐다.
그때는 가보지 않은 길이라 몰랐던 것이다. 마흔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나이라는 것을.
▲ ⓒ 홍보서포터즈 정용자
그녀를 위해, 그녀로 지칭한 세상의 모든 마흔(절망하거나 방황하는)을 위해 육십에도 여전히 꿈꾸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녀는 스스로 방향을 찾았지만 육십에도 여전히 방황하는 삶도 있음을, 육십의 여자가 마흔 그녀의 삶에서 쿵 하는 울림을 느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홀린 듯 책에 서명을 받고 책에 적힌 그녀의 인스타계정에 글을 남겼다. 마흔이 되면 뭐라도 될 줄 알았던 그녀가 절망으로 떠나 성장하고 온 모습이 육십의 누군가에겐 영감을 주었다는 것을. 당신은 뭐라도 된 게 틀림없다고, 그 이상 표현하고 싶었으나 나머지는 꾹 누르고 마음에만 담았다. 살면서 나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영감을 받았다면 그 삶은 헛된 게 아니다. 육십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던 여자에게 깨달음을 준 마흔의 그녀는 뭐라도 해낸,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인 것이다.
▲ 질의응답이 쏟아지던 시간 ⓒ 홍보서포터즈 정용자
▲ 박진영 작가의 이야기가 담긴 책 '그래서 실크로드' ⓒ 홍보서포터즈 정용자
마흔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던 사람과 육십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던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시대 살아있음으로 뭐라도 된, 모두 이룬
우리들이라고! 우연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힘겨운 마흔과 예순에 걸쳐 있다면 툭 털고 힘내시기를!
홍보서포터즈 정용자(jinju1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