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사연 

폐결핵으로 29세에 요절한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동백꽃’은 사춘기 시골 소년 소녀의 풋풋한 사랑을 그려낸 작품으로, 해학적 내용과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가 돋보이는 단편 소설이다. 그러나 소설에 나오는 ‘노란 동백꽃’은 생강나무를 일컫는 강원도 사투리로 동백꽃은 주로 한반도 남쪽 지방에서 겨울에 피는 꽃이어서 강원도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사진1+김유정.jpg

38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던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선운사 동백꽃’이란 시에서 여자에게 버림받고 끝내는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고 노래했다.

시인 정훈은 백설이 눈부신 하늘에 다홍으로 불이 붙고 사모치는 정화(情火)에 ‘그 누구를 사모하기에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라면서 하얀 눈과 붉은 동백을 대비시켰다.

시인 문정희는 동백꽃을 가혹한 확신주의자라고 하면서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다’라고 묘사했다.

미당 서정주는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라면서 질박한 전라도 사투리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와 애환을 고스란히 토해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신파적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곡조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나 왜색풍이라 하여 한 때 금지곡이었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이 빨갛게 멍들었다’라는 절창(絶唱)에 가슴이 무너지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사진2+이미자.jpg

우수(憂愁)의 정서를 잘 표현하는 싱어송라이터 송창식은 선운사 동백꽃의 처연한 낙화를 노래하면서 바람 불어 서러운 날에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을 보러 오라고 한다. ‘떨어지는 꽃송이가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라면서.

 

그런가 하면 전 세계에서 수없이 공연되는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파리 사교계 최고의 에이스인 매춘부 ‘비올레타’와 순정남 ‘알프레도’ 간의 신분을 뛰어넘는 비극적 사랑 이야기다.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비올레타’가 가슴에 단 꽃이 바로 동백꽃이다. 

 

사진3.+라트라비아타.jpg

‘동백꽃 필 무렵’은 2019년 9월부터 11월까지 방영한 40부작 드라마로 공효진, 강하늘, 김지석, 오정세, 손담비 등이 출연했다. 최고시청률이 24%에 달해 연기대상은 물론, 수많은 작품상을 수상했고 재미와 작품성 모두 인정받았다.

싱글맘 동백(공효진)은 옹산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술집 ‘카멜리아’를 운영한다. 어린 시절부터 위축된 채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아온 동백은 주변으로부터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감수하면서 말수도, 목소리도 작고, 행동 자체도 늘 조심스럽다. 그런 그녀에게 접근한 낯설고도 용감한 경찰관 용식(강하늘)이 우울했던 그녀의 인생에 반전을 일으킨다. 촌스럽고 투박하지만 사랑 앞에는 양보도, 주저함도 없는 용식과 수줍게 대응하는 동백이 사랑의 힘으로 부조리하고 불의한 세상과 맞선다. 극 중 용식의 대사는 그래서 코믹하지만 로맨틱하다. “우리 그냥 불같이 퍼붓지 말고… 그냥 천천히, 따끈해요. 불같이 퍼붓다가 헤어지면 다 땡이던데.”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때가 바로 ‘동백꽃 필 무렵’이다. 

 

사진4.+동백꽃+필+무렵.jpg

 

동백꽃의 의미

동백나무의 학명은 ‘Camellia japonica’, 영어로 카멜리아(Camellia)다. 추위를 잘 견디며 눈 내리는 한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강인함으로 10월 초부터 다음 해 4월까지 꽃이 핀다. 동백나무는 한반도에서 동해는 울릉도, 서해는 대청도까지 분포하고 해안을 따라서는 서천군, 내륙으로는 지리산 화엄사, 고창군 선운사 경내에서 자라는 것들이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동백나무는 사철 푸른 나무로 제대로 자라면 6~9m 정도이고 붉디붉은 꽃잎과 샛노란 수술에 더해 잎사귀는 빳빳하고 반질반질하며 짙푸른 빛이 나서 처연할 만큼 아름답고 조화롭다. 동백꽃이 지는 모습은 더 인상적이어서 많은 노래와 시, 소설의 소재가 되었다.

 

동백은 ‘번영(繁榮)’이나 ‘불길(不吉)’의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수명이 길고 푸르기 때문에 영화(榮華)를 상징하는 길상(吉祥)의 나무로 여겨지는가 하면, 꽃이 질 때 하늘을 보고 송이째 떨어지기 때문에 마치 목이 잘리는 것과 같다고 해서 불길하다고 보는 이도 있다.

 

동백꽃은 엄동설한에 꽃을 피운다고 해 ‘청렴’과 ‘절조’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붉은색 동백꽃은 ‘나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분홍색 동백꽃은 ‘그리움’, ‘당신의 사랑이 나를 아름답게 합니다’, 흰색 동백꽃은 ‘순결’, ‘비밀스러운 사랑’, ‘어머니와 아이의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사진5.+동백꽃+낙화.jpg

 

꽃 그리고 동백꽃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다. 꽃은 외양뿐 아니라 향기로도 사람의 본능과 감성을 자극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한다. 꽃은 주로 생명, 젊음, 풍요, 명예, 존경 등의 밝은 이미지로 존재하지만 슬픔과 이별, 허무 등을 극복하려는 상징으로도 치환된다.

 

결혼식에 쓰이는 화려한 꽃장식은 살아있는 자에 대한 축복을 의미하고, 장례식장의 단정한 꽃장식에는 경건하고 엄숙한 의미가 스며 있다. 로마 신화에서 꽃의 여신인 플로라(Flora)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Zephyrus)와 결혼하고 인간들에게 수많은 종류의 꿀과 꽃을 선물하였다. 세상에 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꽃 중에서 동백꽃은 ‘사랑’을 노래하는 의미가 가득 담겨 있다. 아직도 가슴 아픈 사연이나 미련이 남아있다면 한 번쯤은 동백꽃을 만나러 갈 일이다. 일상의 지루함이나 권태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어둡고 우울할 때, 홀로 외롭고 가라앉을 때 마음이 이끄는 대로 동백꽃을 보러 갈 일이다.

 

동백꽃이 흐드러질 겨울날이 아니면 어떠하랴. 아름다운 ‘이별’을 예감하는 동백의 처연한 붉은 입술을 보기 위해 혼자든 아니든 단풍 지는 이 늦가을에 정말로 훌훌 털고 떠나가 볼 일이다.

 

[동백꽃 명소]

 

고창 선운사

사진6.+선운사+동백꽃.jpg
우리나라 최대의 동백꽃 군락지. 선운산에 만발한 동백의 빨간 꽃잎과 짙푸른 잎사귀가 천년 고찰 선운사를 배경 삼아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 선운사 대웅전 뒤뜰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500여 년 된 동백나무 3,000여 그루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선운사 동백나무는 화재로부터 전각을 보호하기 위해 심었는데 다른 사찰 주변에도 동백나무 숲이 많은 이유는 주변 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수 오동도

사진8.+오동도+동백꽃.jpg
섬 전체에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1월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 3월이면 만개한다. 오동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한려수도 관광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오동도는 약 800m의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아리따운 여인이 도적떼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 바다로 몸을 던졌고, 이를 알게 된 남편이 오동도 기슭에 무덤을 만들었는데 무덤가에 하얀 눈과 함께 동백꽃이 피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부산 동백섬

가왕 조용필이 노래한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가사에도 ‘꽃피는 동백섬’이 나오듯 해운대 동백섬은 빼어난 자연미로 부산시 지정기념물이면서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기암괴석과 붉은 동백꽃이 어우러진 절경이 옛 문헌인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도 남아있다.

그 외 경남지역에는 거제 지심도를 비롯한 여러 동백나무 숲이 있다. 특히 거제 해변 도로의 동백나무 가로수와 동백꽃이 일품이다. 

 

제주도 카멜리아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21~2022 대한민국 관광 100선’에 포함될 정도로 가고 싶은 여행지로 동양에서 가장 큰 동백 수목원이다. 전 세계 500여 종, 6,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한데 모여 멋진 풍광과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난만하게 피어난 동백꽃을 배경으로 멋진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찾아드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50+시민기자단 정종호 기자 (powerarcdong@hanmail.net)

 

 

정종호.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