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터널 메모리:The Eternal Memory〉
아우구스토와 파울리나가 보여주는 영원한 기억의 빛나는 순간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이 들어 가는 것은, 늘어나는 주름만큼 서로를 봐야 하는 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상의 순간들을 함께하며 서로의 존엄을 지켜내는 일이야 말로 고귀한 사랑의 모습이다. 마이테 알베르디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이터널 메모리’는 이러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출처 : 엣나인필름〉
‘이터널 메모리’는 퇴행성 뇌 질환으로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이 점진적으로 악화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실제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남자와 그를 간병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여자의 4년을 기록한다. 남자의 기억이 사라지는 과정과 그 과정을 겪어내는 남자의 고통, 그리고 그를 간병하는 여자의 사랑과 아픔을 모두 담아낸다.
남자가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은 아침에 눈을 떠 여자에게 ‘안녕?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며 아이처럼 웃는 순간부터,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에게 이곳이 어디인지, 그녀가 누구인지, 자신은 누구인지를 묻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여자는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그에게 인사를 건네며, 이곳은 그들이 함께 사는 집이며, 그녀는 그의 아내이며, 그의 이름은 아우구스토 공고라고 대답한다. 그녀는 그의 눈을 부드럽고 또렷이 응시하며 몇 번이고 반복한다. ‘기억해요, 여기는 우리의 집이고, 우리는 부부이며, 당신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아우구스토 공고에요’라고.
여자의 ‘기억해요’라는 당부와는 반대로 남자의 기억은 점점 흐려져만 간다. 그는 거친 목소리로 자신의 친구들은 어디에 있는지, 아이들은 왜 함께 있지 않는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곁에 없는지를 따지듯 애절하게 묻는다. 그리고 결국 그가 아내를 기억해 내지 못하는 순간, 침착하고 다정했던 여자의 목소리가 불안해지고 떨린다. 몇 시간 뒤에서야 그녀를 기억해 낸 남자에게 그녀는 ‘오늘 당신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오후 3시쯤) 나를 기억하지 못했어요’라며 눈물을 흘린다.
〈출처 : 엣나인필름〉
눈을 감은 채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을 여자가 부드러운 손길로 쓸어내린다.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손끝을 통해 느껴지는 서로를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듯한 그들의 손짓은 서로를 향한 무한한 사랑과 아픔을 담고 있으며, 그 모습은 무척 고귀하다.
영화의 주인공인 아우구스토 공고는 칠레의 역사적인 저널리스트다. 그는 칠레 독재 정권 시기에 다른 언론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그는 용감하게 거리로 나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시대의 진실을 기록했다. 그의 노력은 칠레 독재 정권의 참혹함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편, 파울리나 우리티아는 칠레의 배우이자, 첫 번째 문화부 장관으로서 대중들에게 인정받은 정치인이다. 파울리나는 8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아우구스토와 모든 일상을 함께 한다. 그녀는 공연 연습을 하는 연습실에 아우구스토를 데리고 간다. 그녀가 강의하는 강의실에도 그와 동행한다. 알츠하이머 병을 앓는 그를 그녀의 일상과 고립시키지 않고, 그가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이 그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다. 망각이 일상이 되는 것은 잔인하고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을 함께 겪어내는 그들의 동행은 따뜻함이 교차하며 공존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다.
그런데도, 파울리나는 사적인 부분을 공개하는 다큐멘터리 촬영 제의를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를 설득한 것은 바로 아우구스토였다.
‘파울리나, 이 책을 쓰는 데 6년이 걸렸어요. 나에겐 매우 중요해서 꼭 오늘 당신에게 주고 싶어요. 여기에는 고통과 공포가 가득하지만 고귀함도 가득해요. 여전히 금지된 기억이지만 이 책은 고집스럽죠. 기억하고 용기 있는, 당신처럼 씨를 뿌리는 사람들. 당신은 기억하고 있고, 용기를 가지고 있고, 씨를 뿌리는 사람이에요.‘
칠레의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후 아우구스토가 집필한 [칠레: 금지된 기억]이라는 저서의 서문이다. 칠레 독재 시대 때 겪었던 사건들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웠지만,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우구스토는 ‘기억한다’는 능동적인 행위는 용기 있고 고귀한 일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이터널 메모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그는 스스로 용기를 낸 것이다. ‘나의 나약함을 보여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수많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나에게 닥친 이 상황만이 예외가 될 이유가 있을까’ 라고 말한 아우구스토. 영화 ‘이터널 메모리’는 그의 기억이 사라져가는 순간까지 스스로 자신의 존엄을 지켜낸 결과물이다.
〈출처 : 엣나인필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현실은 잦은 병치레와 거동이 불편해지는 서로를 인정하고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순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잔인한 현실이리라. 파울리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것'은 한 개인의 사랑과 헌신을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우리 모두 어느 시점에서는 누군가를 돌봐야 하며, 그것이 사회의 진화와 발전에 기여한다고 믿는다. 그녀의 '돌봄'은 우리에게 묻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그 사랑을 어떻게 지켜나 갈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사랑하는 이가 '환자'가 되었을 때, 그들과의 일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환자와 간병인의 현실에서도 행복한 순간을 어떻게 만들어 갈것인가?". '이터널 메모리'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기억을 잃어가는 아우구스토와 그를 돌보는 파울리나의 따뜻한 일상을 통해 우리에게 노년의 삶과 사랑에 대한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을이 시작되는 요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터널 메모리’를 관람하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까?
시민기자단 황은미 기자(i@eunm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