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현재, 우리는 전대미문의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 80여 년의 세월을 보낸 어머니는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다”고 하신다. 함께 공존하기 위해 흩어지고 떨어지고, 거리를 두는 것이 사회적 연대가 되고 있다. 불편하기도 하고 매우 낯설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을 어떻게 극복하고 맞서야 할까?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상황에 대한 여러 분석과 포스트 코로나(Post-COVID) 사회에 대한 전망과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세계 유명 석학들은 ‘코로나19는 이미 예견’된 것이라는 의견을 하나같이 내놓는다. ‘사후 확신 편향’1 혹은 ‘후견지명’ 같은 느낌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알고 실천하는 것은 완전 다른 의미이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서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는 ‘이미 알던 것이 지금 효과적으로 활용되는가는 다른 문제다. 감염병 전파가 사람과 집단을 불평등하게 가린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코로나19 전파는 정신장애인 수용시설, 장기요양시설, 노동 조건이 열악한 콜센터 등 이른바 사회적 취약점을 파고들었다. 간호와 돌봄 노동을 통해 드러났던 극심한 젠더 불평등에 있어서도 나아진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미 알고 있던 것과 아직 실천하지 않은 것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그려볼 수 있겠지만, 크게 3가지 정도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초연결된 위험사회

현재의 변화를 만들고 있는 원인 중 ‘연결’의 힘은 대단하다. 연결은 연결을 만들어 거대한 네트워크 사회를 구성하고,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초연결된 상태가 되어 있다. 사회적 연결망이 강화되면 그 사회는 단단해지고, 투명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초연결은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초연결의 역설이다. 초연결된 사회에서의 위험은 이제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한정되지 않고, 국경을 넘어 생산되고 재생산되어 전체로 퍼져나가는 전 지구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초연결된 개인 한명 한명의 생존이 사회 전체의 지속성을 담보해 준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노동을 할 수 없는 사회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노동의 종말』에서 ‘결국 노동은 기계가 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1995년, 책이 출간될 당시만 하더라도 흥미로운 주장이였으나 현실감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고,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대결은 ‘노동의 종말’에 현실감을 한층 더해 주었다. ‘산업혁명이 인간의 손발을 대신했다면 정보기술혁명은 인간의 뇌까지도 대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고용 없는 성장은 이미 현실화되었고, 일자리 문제는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되었다. 노동하고 싶어도 노동할 수 없는 개인이 넘쳐난다면 사회의 지속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의 힘이 더욱 커진 사회

『21세기 자본』을 집필한 토마 피게티(Thomas Piketty)는 ‘노동을 통해 대중에게 분배되는 부는 줄고, 자본을 통해 소수에게 집중되는 부는 계속 커질 것’이라고 했다. 부의 불평등은 구조화되었고, 격차는 다중으로 발생하고 있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자본은 기술과 혁신을 결합하여 승자 독식의 플랫폼 제국을 건설해 가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본’으로 변이해서 ‘돈이 없으면 그게 바로 병’이고 위험도가 더 높다는 현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마주할 3가지 사회를 정리해 놓고 나니, 희망은 없고 절망과 탄식이 가득해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성찰과 저항, 행동을 통해 사회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저력이 있다. ‘미래’는 한자 그대로 ‘아닐 미(未)’, ‘올 래(來)’이다. 미래는 오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를 가지고 다투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사회에 맞설 수 있을까? 여기에도 3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두려움보다 ‘혁신’

이제까지 익숙한 경험과 성공의 문법을 버리고 과감히 시도하고 실패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씩 다시 선택해 전환해야 한다. 혁신은 속도보다는 방향이 훨씬 중요하다. 변하지 말아야 할 가치에 집중해야 하고, 사람에게 향해야 한다. 제프 멀건(Geoff Mulgan)은 『사회혁신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하며, 어떻게 추진하는가』에서 ‘혁신은 대개 기득권자에 대한 투쟁, 다른 사람을 변화하도록 설득하는 전염성 있는 용기(contagious courage)와 좋은 아이디어가 현실의 제도로 자리 잡게 하는 실용적인 지구력(pragmatic persistence)을 요구한다’고 했다. 혁신이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데 우리의 혁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

 

현상보다 ‘본질’

현상은 사실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현상만 바라보면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나타난다. 문제의 본질을 찾고 원인을 따져 보아야 한다. ‘무엇(what)’과 ‘어떻게(how)’가 아니라 ‘왜(why)’라는 물음이 필요하다. 머리 아픈 질문이지만 본질적인 것을 따져 묻는 깊이가 요구된다.

 

혼자보다 ‘함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 문제는 매우 큰 문제다. 그래서 정부, 민간, 기업, 개인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 참여적 거버넌스를 실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함께 협력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한선 호남대학교 교수는 신문 칼럼에서 ‘협업은 공동의 목표를 해결하기 위해 껄끄럽고, 귀찮고, 성가시고, 손해보고, 꺾이고, 부딪히는 울퉁불퉁한 일상을 견디는 힘’2이라고 했다.

 

다양성으로 시작하고 끈기로 마무리해야 한다. 글을 쓰고 나니 위의 3가지 방법은 방법이 아니라 큰 방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보다 즐겁고 더 나은 세상은 분명 가능할 것 같다는 믿음과 더불어.

 

 

 


1 어떤 사건의 결과를 알고 난 후 마치 처음부터 그 일의 결과가 그렇게 나타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으로 ‘그럴 줄 알았어 효과(knew-it-all-along effect)'로도 알려져 있음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2 한겨레 칼럼 [한선의 미디어전망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2753.html

 

<참고문헌>

김수련 외, 『포스트 코로나 사회 - 팬데믹의 경험과 달라진 세계』, 글항아리, 2020.

제레미 리프킨 저, 이영호 역, 『노동의 종말』, 민음사, 2005.

토마 피케티 저, 장경덕 역, 『21세기 자본』, 글항아리, 2014.

제프 멀건 저, 김영수 역, 『사회 혁신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하며, 어떻게 추진하는가 (Social Innovation What it is, Why it matters and How it can be accelerated)』, 시대의창,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