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에서 홍성으로"
처음 이 수업이 만들어질 때 수강생들이 개별적으로 표를 예매하고 이동해
여행의 시작점인 기차역에서 처음 만나 시작하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에 대한 우려가 컸다.
패키지 관광이 활성화 된 우리나라에서 표를 직접 예매하고 알아서 찾아와야 한다는 부담은 생각보다 크다.
이런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과연 참여자를 충분히 모집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기획자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과정은 빠르게 마감됐다.
코레일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서 2시간여를 씨름하다
드디어 열차 예매에 성공했다는 어느 참가자의 뿌듯한 웃음과 설레는 마음이 수화기 너머로 느껴진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일상의 새로운 이벤트를 위해 즐겁게 도전하는 모습이 소녀같기까지 하다.
홍성까지 이동하는 2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따지고 보면 처음 보는 이들과 한 버스 안에서,
그것도 서울부터 홍성을 아침부터 밤까지 오가야 하는 어색한 시간은 이번 여행에 없다.
지인들과 같이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삼삼오오 기차 안에서 수다도 떨고 먹거리도 즐기며 여행을 시작한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이벤트일 수 있지 않을까?
여행사가 의도하지 않았던 이번 로컬여행의 숨겨진 재미 한 가지를 찾은 듯 하다.
첫 만남, 버스로 이동
드디어 단체여행의 마스코트, 대형버스에 모여서 첫 번째 일정인 점심식사를 하러 이동한다. 버스 안에서는 홍성의 역사와 특산물, 인물 등 지역과 관련한 다양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설명을 듣다보니 나 역시 홍성과 횡성을 헷갈려하고 있었고, 홍성의 유기농법, 한우, 서해안의 바지락 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홍성 지역으로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홍성에서 도시와 농촌간의 교류가 일어나고 있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 로컬 푸드여행의 의의를 충분히 생각해보게 했다.
맞다. 우리는 지금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비용 대비 효과만을 추구하고, 소소한 기념품을 구매하는 형식으로 추억을 남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던 기존의 여행이 아니라 지역을 알아가고, 지역의 음식을 맛보고, 지역의 삶을 경험하고 우리 삶과의 연결을 고민해보는 공정여행을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점심식사
아침에 기차에 늦지 않게 서두르다가 식사를 하지 못해 어느덧 배가 고프다. 버스는 여느 농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지만 서울에 비해서는 굉장히 여유로운 한 마을로 들어간다. 그리고 웬 마을회관 앞에서 멈춘다. 마을회관에서 점심식사라니! 이건 예상하지 못한 특별한 순간이다.
회관 안에는 마을의 어머님들이 직접 뷔페 형식으로 음식을 준비해두셨다. 놀란 마음은 접어두고 일단 접시 가득 담는다. 이럴수가! 어릴 때 할머니댁에 가서 먹었던 맛이다. 물론 개중에는 ‘할머니들 간이 약간 세다’면서도 맛있게 드시는 분도 계시다. 맞다. 우리 할머니도 내게 음식의 간을 계속 물으셨었다. 된장에 버무린 나물, 시래기 국, 제육볶음까지 이곳에서 일상적으로 해먹는 음식이라고 어머님들이 설명하는데도 유독 정갈하고 따뜻한 집밥을 먹는 느낌이 든다.
참여자들 모두 식사에 크게 기대하지 않고 왔는데, 맛있게 잘 먹었다는 평가를 내리신다. 여행하다가 우연히 들렀던 식당에서 실망하고 나오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맛을 가늠하기 어려운 간판만을 보고 들어가거나 수많은 블로그에서 천편일률로 극찬하는 음식점을 들어가 꽤나 높은 식사비를 내고도 만족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만약 그런 경험이 많다면 로컬푸드 여행은 그런 고민을 덜어줄 수 있을 훌륭한 대안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사는 여행이 소수의 규모로 진행될 때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명으로 여행을 진행하는 것이 괜찮을까 했던 생각은 이 시점에 내려놓게 되었다. 규모가 커지면 이런 소소한 여행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꽃 대신 산책
원래 프로그램에는 꽃길 산책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초반 프로그램을 짜던 시기에 예상했던 것과 달리 올해 홍성 지역은 꽃이 다소 늦게 개화한다고 한다. 활짝 개화한 꽃들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충남도청 근처에 새롭게 정비중인 산책로를 걷는 것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산책로 주면에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한 목련이 여행의 운치를 더한다.
딸기를 만나다
‘봄날의 딸기여행’이라는 프로그램명에 걸맞게 절대 대체될 수 없는 꼭지가 바로 딸기 체험이다. 딸기를 채집하는 것이 과연 흥미로울까? 하는 마음을 갖고 버스가 도착한 곳은 한 농가에서 운영하는 ‘석이네 딸기 체험장’이다. 우리 모두가 예상하듯이 농장주의 자녀 이름이 ‘석이’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번 여행에서 중간지원을 묵묵히 한 도농교류지원센터가 홍성지역의 농장들과 체험객을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다수의 농가 중에서 일정한 원칙에 따라 체험객들을 농장들과 매칭하고 있었다. 센터를 통해서 농가는 손님을 맞고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경험을 쌓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인연을 맺은 체험객이 센터를 통하지 않고 직접 농가와 여행이나 농산물을 교류하게 되기도 한다. 홍성 도농교류지원센터는 도시와 농가 사이의 교류 규모를 키우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었다.
딸기농장에서 딸기를 채집하기 전, 딸기에 대한 다양한 설명과 채집 시 주의사항을 안내받는다.
1. 딸기를 상처만 입히고 따지 않는 것은 안 된다. 다른 딸기 재배에 피해가 되기 때문이다.
2. 딸기의 밑면을 쥐고 한 번에 따는 것이 상처 없이 따는 최선의 방법이다.
3. 딸기를 먹고 난 꼭지 부분은 비닐하우스 안에 버리면 병충해의 원인이 되니 버리지 말자.
농장 안에서 딸기를 채집해 충분히 먹고 한 팩 정도를 가지고 올 수 있다. 어떤 분들은 점심을 조금만 먹고 올 걸 후회할 정도로 달고 싱싱한 딸기를 만났다. 다들 최대한 직접 채집한 딸기를 먹어보고 담아오리라 하는 생각인지 비장한 표정으로 딸기팩을 챙긴다.
수강생 중 어떤 분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뚜껑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딸기를 따며 식탐을 부리고 그렇게 욕심부리면 안된다는 농장 주인의 타박도 이어진다. 어쩌면 이런 정도의 실갱이도 체험 여행이기에 즐거운 기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딸기꽃
이응노 화백의 갤러리로
딸기 농장을 떠나 도착한 곳은 이응노 화백의 갤러리이다. 이응노 화백은 인간의 군상 형태를 다양하게 변화된 모습으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겨한 작가이다.
쿠킹클래스
갤러리 건물 내부에 진열되어 있는 이응노 화백의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나와서 갤러리 전체를 산책한다. 그리고 한편에 있는 이응노 생가 기념관인 작은 초가집에 도착한다. 여기 앞뜰에는 어느새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준비중이다.
간단하게 샴페인과 함께 할 핑거푸드를 직접 만들고 즐기는 방법을 배워본다. 여기에 사용된 재료 중 가능한 것은 홍성에서 직접 재배한 식재료를 공수한다. 특히 딸기는 앞서 딸기농장에서 가져온 바로 그 딸기다.
샴페인과 치즈, 비스킷과 빵,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얹어서 먹고 즐길 수 있는 토핑으로 간단하게 카나페와 같은 간단한 핑거푸드를 배우고 원하는 형태로 직접 만들어 먹어보는 시간을 가진다.
기본적으로 보이는 재료 외에 위에 뿌려먹는 시럽 역시 현지에서 재배한 과일로 만든 것이라 로컬푸드 여행의 의미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복잡하고 굉장한 요리는 아닐 수 있지만, 간단하고 색다른 방식으로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만들고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배우고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따뜻하고 맑은 날씨. 딸기 체험과 갤러리 관람 이후에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파티같은 분위기에 다들 만족하고 즐겨본다. 지역에서 바로 공수된 싱싱한 재료로 만든 음식들은 시각적으로도 맛도 훌륭하다. 게다가 여유로운 마음이 정취를 더한다.
야외 쿠킹 클래스 행사는 이응노 화백의 생가 초가집 옆 뜰에서 진행되었다. 지역 단위에서 관리되는 공간에서 이런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또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와의 연계가 바탕이 되어서일 것이다. 개별 여행사가 시도하기 쉽지 않은 아이템과 포맷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도농교류를 실질적으로 확장시켜 지역 발전을 이끌어가는 도농교류지원센터와의 연계를 통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주말에 무엇인가 하고는 싶은데, 멀리 나가기에는 부담스럽다.
운전을 해서 떠나려니 꽉 막힐 도로가 걱정이다.
이러한 걱정거리를 피해 소소한 행복을 느껴볼만한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홍성 로컬푸드여행이 꽤 괜찮은 선택지가 될 만하다.
가족 · 지인들과 오랜만에 기차에 앉아 한동안 못나눈 이야기도 나누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 이런저런 체험도 해보고,
돌아올 때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이런 여행을 한번쯤 떠나보면 어떨까.
글·사진 / 중부캠퍼스 교육사업실 이준석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