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가! 익숙함에서 멀어져! 그리고 보고 느껴!
I’m Traveler.
대부분 나라의 국외 입국심사는 간단하다. 입국심사원에게 패스포트를 건네면 잠시 여권 살펴보고 도장 꾹. 씨익 서로 한번 웃어주면 통과다. 조금 친절한 입국 심사원은 ‘Have a nice day’ 한마디 해주고 ‘Thank you’ 응답하면 끝이다. 이제 캐리어 찾으러 가면 되는 거지.
영미권은 좀 다르다. 약간의 문답 절차가 있다. 간단한 대화이지만 이게 처음 가는 사람들을 다소 긴장하게 만든다. 대개의 문답 내용은 이렇다. “여권 보여주세요.” 패스포트 정도 귀에 들리면 소지한 여권을 그냥 보여주면 된다. 그다음은 “방문 목적이 무언가요?” 이것도 ‘visit purpose’ 정도 들리면 휴가차, 비즈니스 차, 친구 만나러 등 간단한 단어로 응답하면 된다. 길게 답하는 것보다 간단히 답하는 게 좋다. “얼마 정도 있을 거냐?” 이것도 ‘하우 롱’, ‘스테이’ 정도 들리면 한 달, 이 주일 정도. “숙소가 어디냐?” ‘웨얼’, ‘스테이’ 정도 들리면 어디 호텔 정도 답하면 된다. 대부분 이 정도다. 가끔은 직업을 물어보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미소 띤 모습과 당당한 어조로 이렇게 답했다. “I’m Traveler.”
나는 그날 여행가가 되었다. 그 친구에게 “나는 백수일세” 이렇게 답하기는 싫었다. 실제 미 서부의 국립공원인 그랜드캐니언, 자이언캐니언, 요세미티 등 탐사 여행을 위해 떠났으니 여행가가 그리 틀린 건 아니다. 난 언젠가는 답하고 싶었던 여행가임을 입국심사원에게 똑 부러진 발음으로 외쳤고 그의 “Enjoy your trip”과 엄지척의 답을 들었다. “Thank you so much”로 응답하고 기분 좋게 입국 심사대를 빠져나왔음은 물론이다.
▲ 훅 떠나 도착한 곳, 웰컴 투 로스앤젤레스.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 I’m Traveler.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 웅장한 암석의 빛과 물 따라 걷는 길이 참 좋았던 미 국립공원 자이언캐니언 입구.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어떤 여행을 즐기는가?
인상 깊었던 검사의 기억이 있다. MBTI 성향 검사인데 그중 이런 항목이 있었다. ‘당신은 여행 떠나기 전 계획을 철저히 세우는 편인가?’, ‘여행 중 처음의 계획이 변경되면 불편하고 불안한가?’, ‘여행 중 좋은 곳이 발견되어도 당초의 코스가 아니면 아쉬워도 그냥 지나치는가?’ 그 외에도 상당히 많은 여행 항목이 있었는데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대략의 것들이다.
이 같은 항목의 질문에 나는 다 ‘아니다’의 응답을 했다. 이 성향 테스트는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성향이 그런 쪽을 선택하는 것인데 지금 같은 질문이 있어도 나의 응답은 같을 것이다.
맞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대체로 두 가지만 정한다. 하나는 여행지, 그리고 숙박지. 나머지는 모두 현장에서 대응한다.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는다.
떠남을 즐기고 그 시간 내 앞에 보이는 것과 상황에 대응한다.
홀로거나 아니면 둘 정도의 여행을 즐기는 이유의 답이 대충 나온다. 그렇다고 여럿이 가는 여행을 회피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함께 가자고 하면 거의 동참하는 편이니까.
가끔 까다로운 친구들이 있긴 한데 여행의 즐거움으로 대부분 넘어가긴 하지만 불평이 오래갈 때도 있다. 누구 때문에 여행 일정이 흐트러졌다고. 그래서 여럿이 함께 떠나는 여행에는 자신의 여행 성향을 크게 내세우면 안 된다. 동의를 구하고 서로 배려해야 한다.
훅 떠나는 여행
누군가의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듣거나 방송매체의 여행지 소개 같은 것을 보다가 마음이 동하면 나는 빈 날의 일정을 먼저 잡아 놓고 그냥 훅 떠난다. 가장 빠른 시간을 잡는다. 노래 가사처럼 배낭 하나 짊어지고. 대개 내 경험으로 보면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가지 못한다. 컨디션이 좀 안 좋은데, 기후가 안 좋다는데, 거기 볼 게 별로 없다는데, 숙소가 맘에 안 드는데, 급한 일이 생길 것 같은데, 가서 뭘 하지 등등이다.
그래도 나는 떠난다. 그리고 대부분 잘 떠났음에 대해 만족한다. 움직임은 나를 변화시키고 낯선 장소는 늘 새로움을 준다. 그곳엔 다른 사람이 있고 다른 풍경이 있다. 다른 대화가 있어 고착된 사고의 지평을 넓게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좋다. 여행은 그래서 훅 떠나는 거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망설이지 마라. 다만 그렇게 떠날 수 있는 여건을 사전에 만들고 준비해야 한다.
3개월의 여행을 위한 일 년의 일
가끔 편한 여행으로 동남아를 선택한다. 짧게는 3일에서 5일 정도의 시간을 만들면 동남아 여행은 가벼운 마음으로 훅 떠날 수 있다.
베트남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그때는 베트남 남단인 메콩에서 북단인 사파까지 종단 여행을 했으니 10일이 넘는 다소 긴 일정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의 짧은 대화는 여행의 재미를 더하게 한다. 호찌민의 신투어리스트(여행사)에서 메콩델타로 가는 버스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홀로 배낭족이었는데 금융 쪽 일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여행을 즐기는 친구였다. 세계 곳곳에 여행으로 만나 알게 된 친구들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얘기했고 자신이 일을 하는 이유는 여행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공감 가는 그녀의 답을 지금도 기억한다.
가까운 친구도 그런 경우다. 3개월의 여행을 즐기기 위해 일 년간 일을 한다는 그는 중국 여행 마니아다. 칭다오를 거점으로 하여 중국 구석구석을 다니고 그것을 여행기로 남긴다. 나도 그와 함께 칭다오에서 카이펑까지 훅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여행을 떠나기 위한 삶, 매력 있다.
▲ 베트남 메콩의 수상가옥, 그들의 삶은 어떨까!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 베트남 메콩강의 어부, 그녀의 웃음이 환하다.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모르는 곳에서의 낯선 만남을 즐기는 여행
예기치 않은 상황과의 부딪힘, 궁금함과 기대감. 그것을 즐기는 것이 여행이다. 대체로 얻은 결론인데 대부분 여행객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다. 일본 교토에서의 일이다. 숙소로 가는 길을 못 찾아 잠시 망설이는 중 자전거를 타고 오는 할머니를 만났다. 찾는 주소를 알려주었더니 자전거에서 내려 자기를 따라오라 하면서 한참이나 걸리는 숙소를 손으로 가르쳐 줄 수 있는 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자신도 많이 바쁜 길이라면서. 끝까지 안내를 못 해주어 미안하다면서. 그 할머니는 어둠이 내릴 무렵 낯선 곳에서 길을 묻는 여행객을 걱정하였을 것이다.
대부분 여행지에서 그곳의 사람들은 마음을 다해 외지인을 안내해 준다. 마치 우리들이 외국에서 온 여행객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노력을 다하는 것처럼. 여행에서 만나는 낯선 이들의 친절함은 그 나라의 인상을 바꾸어 놓는다. 세상은 참 좋다. 살만하다고 작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여행이다. 걷는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그 지역의 뒷골목을 다니면서 나만이 느끼는 낯선 공간과의 만남을 즐긴다. 준비되지 않아 겪게 되는 낭패감도 있지만 그것도 여행의 큰 묘미이다.
훅 떠나기 좋은 곳
내가 가장 많이, 편안하게 훅 떠나는 여행지 중 한 곳이 제주다. 제주는 한마디로 아름다운 곳이다. 나는 직장 생활 중 그곳에서 1년 3개월을 지냈다. 서울로 오지 않고 머무는 주말, 제주의 이곳저곳을 걸었다. 마침 내가 머문 그때 올레길이 만들어졌고 나는 주말의 이틀 시간을 올레길을 걸으며 보냈다. 그 덕에 제주의 속살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었다.
제주도민인 그곳 직원들이 내게 물었다. 뭐 그렇게 볼 게 있다고 열심히 걷냐고. 그들은 정작 모른다. 현지인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 매일 보는 익숙함의 눈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읽지 못한다. 제주 하늘의 높음과 푸름이 육지의 그것과 다름을, 화산암으로 만들어진 제주의 산담과 밭담, 그리고 집담이 보여주는 제주만의 색감을, 비췻빛 푸른 바다의 눈부심을, 올레길을 통해 걸어 들어가는 골목골목의 아기자기함을, 또 제주 동네의 정겹고 예쁜 마을 이름들을.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을 만나는 사람들이 그곳의 진면목을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을.
▲ 올레길은 큰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의 제주어다.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 제주의 색상은 참 평화롭다.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 아름다운 제주의 바다빛.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 훅 떠나 걷기 좋은 곳 제주.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그러니 훅 떠나라, 훌훌 떠나라. 잠시 모든 것 내려놓고 삶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자유의 공간을 향해 떠나라. 익숙한 이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낯선 이의 시선으로 그곳을 제대로 읽고 느껴보라. 하여 그곳에 익숙한 이들에게 그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알리고 느끼게 하라.
아니다. 늘 익숙한 나에게서 벗어나 내가 갖고 있는 또 다름의 낯선 존재를 훅 떠나는 여행을 통해 돌아보라.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try3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