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패션 디자이너 4인 4색 인터뷰’
세렌디피티.
시민기자로 남성 바느질을 취재하러 한땀공방을 찾았다가 즉석에서 바느질 커뮤니티에 가입하게 되고 상냥하고 유쾌한 선생님 네 분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한 인연이었다. 오늘은 바느질을 지도하는 선생과 제자 사이가 아니라 기자와 취재원이 되어 만나는 특별한 자리였다.
‘순환패션 디자이너’란 생소한 직무
서대문50플러스센터는 2023년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50+ 업사이클링을 위한 패션디자이너’를 운영 중이다. 다소 긴 타이틀의 이 공모직은 명칭만 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쉽게 가늠하기 어려웠다. 다만 ’업사이클링‘, ’패션‘ 이란 단어가 있어 대략 옷가지의 재활용과 밀접할 것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상세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사업공모 내용을 보니 순환패션 디자이너 (이하) 는 ’한땀공방‘의 운영 주체로서 주민 대상의 의류 환경 및 순환패션 관련 교육과 커뮤니티 운영, 옷 수선 서비스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고 되어 있다. 계약기간이 12월로 종료되는 순환패션 디자이너 손만순, 민경희, 박소영, 배선희 님과 허심탄회한 좌담을 나누었다.
4인 4색의 이야기 속으로
기자 )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네 분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모두 ) 안녕하세요? 저희도 무척 반갑습니다.
기자 ) 인터뷰를 한다니 긴장하셨을 텐데 평소처럼 편안하게 말씀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각각 가장 선호하는 색상이 있거나 혹은 나의 삶을 색상(color)으로 나타낸다면 어떤 색깔이 어울릴까요?
손 ) 저는 식물의 초록색을 좋아해요. 나무나 산의 초록을 보면 마음이 굉장히 안정돼요.
그래서 그런지 그린 색이 친밀감이 있어요
▲ 손만순 디자이너 ⓒ 시민기자단 이춘재 기자
민 ) 저는 블루예요. 일에 대한 열정을 타고났나 봐요. 여태까지도 40여 년을 열심히 일해 왔는데 아직도 열정이 남아있어요. 보통 열정은 레드로 표현하는 데 저의 열정은 정의감, 순수함 이런 것을 담고 있어요. 젊음이나 생명의 원천인 물을 상징하는 푸른 색 (블루)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 민경희 디자이너 ⓒ 시민기자단 이춘재 기자
박 ) 저는 어떤 특정 컬러를 선호하지는 않아요. 상황에 따라 그 순간 빛나는 컬러에 관심을 두죠. 그래서 어떨 때는 빨간색도 예 쁘고, 녹색이 예쁠 때도 있고, 때론 검정색도 예쁘게 느껴지기도 해요.
▲ 박소영 디자이너 ⓒ 시민기자단 이춘재 기자
배) 저는 신비한 느낌의 보라색을 좋아해요. 보라색은 변화무쌍한 면이 있어요. 예를 들면 보라색에 파랑이 가미되면 남보라가 되 잖아요. 저는 평소 사람들과 잘 섞이는 편이라 보라색처럼 상황 변화에 잘 적응하는 편이에요
▲ 배선희 디자이너 ⓒ 시민기자단 이춘재 기자
기자) 네 분이 각자 선호하시는 컬러가 있군요. 들어보니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으며, 순환패션 업무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손) 저는 이 분야(의상)에서 40여 년간 일했어요. 처음에는 의상실에서 일하다가 남대문에서 옷 장사를 했어요.
그 후 아현동에서 웨딩사업을 10년 정도 했는데,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운영하던 사업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비대면 생활이 확산되면서 결혼식을 미루다 보니 몇 년간 일거리가 없었어요. 일을 하고 싶어 빨리 코로나가 끝나기를 기원했 는데 누군가 이 공모사업을 소개해 줘 알게 되었죠. 서류를 제출하고는 재활용품을 활용한 여러 가지 소품을 만들어 보면서 준비를 했는데 마침내 합격 통지를 받았어요.
민) 저는 패션사업을 하는 대기업에서 30년을 근무했어요. 평소에도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런 저의 성향은 당시 업계에 서는 비주류에 해당되었어요.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섬유 패션 쪽에서 나의 에너지를 쏟는다는 데 회의를 느끼고는 있었지만 어떤 행동으로까지 옮기지는 못했죠. 그런데 최근 환경문제가 글로벌 관심사가 되면서 저도 업사이클링, 수공예작업, 친환경 염색, 공유공간 등 지역이나 사람들을 생각하는 쪽으로 삶의 가치가 바뀌었어요. 저는 ’비블루‘(be Blue)라는 개인 브랜드를 하 나 갖고 있는데 친환경적 요소로 환경오염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아이템이에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순환패션 디자이너 사업 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직접 체험하고 싶어 지원했어요.
이 일을 하기 위해 사업을 휴업해야 했지만 지난 1년 동안의 순환패션디자이너 활동은 저의 큰 꿈을 단단히 채우는 일련의 과 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 저의 본래 직업은 무대의상 디자이너예요. 1999년부터 했으니 꽤 오래되었죠. 그런데 무대의상 작업은 일감이 일정하지 않아 서 일이 있을 때는 엄청 바쁘지만 없을 때는 아예 없어요. 제가 장래를 고민하게 될 정도로 나이 먹은 데다가 마침 비수기인 동 절기에 이 공모사업을 알게 되었어요. 패션이란 단어가 들어가니 놀고 있는 저에게 주위에서 막 권하게 되었던 거죠.
사실 무대의상은 소모성이에요. 한 작품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재활용이 쉽지 않죠. 그래서 업싸이클링을 키워드로 하는
이 사업이 고민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론 기대도 가졌던 것 같습니다. 평소에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해 왔는데 이 일을 하면 서 ’up cycling‘ 같은 공적 이슈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앞으로는 일상생활에서도 음식이나 옷을 절약한다든지, 플라스틱 사용 안 하기 등에 더 신경 쓰려고 해요.
배) 저는 예전에 완구 수입 회사 웹디자이너로 일했어요.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일이었는데 결혼하면서 입덧이 심해 그만두었어요.
이때 경력단절자가 되었고 육아를 하면서 아이들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혔어요. 옷 만드는 재주가 있어 의상학과 진학하는 꿈을 가졌지만, 여의치 못해 양장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지요. 그리고 장애인 복지관에서 미싱 수업을 진행했어요.
그러다 코로나 때문에 그것도 중단되었는데 마침 워크넷에서 구직 정보를 찾다가 이 사업(경력형 일자리)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지구 환경오염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아이들 옷을 리폼해 주곤 했는 데 마침 업싸이클링 업무를하게 되니 저와 잘 맞았습니다.
▲ 근무 중인 모습 ⓒ 시민기자단 이춘재 기자
기자) 순환패션 업무를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셨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소개해 주세요.
손 ) 여기에서 성격이나 성향들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많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대하면서 갈등이 생기고 조정해 가면서 결국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법을 터득하게 된 것 같아요.
민 ) 대개 바느질은 여성 영역으로 인식되어 있는데 남성들의 관심이 많아 놀랐어요. 생각 외로 호기심, 열정이 남달라서 그런 선 입견이 깨졌어요.
남성이나 여성이나 이제는 영역이 따로 없는 것 같아요. 이처럼 젠더의 경계를 넘는 프로젝트가 많아지면 잠재된 능력들이 분출될 테니 사회에도 긍정 에너지가 생기지 않을까요?
손) 맞아요. 남성들이 오히려 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진지하고 가르침을 잘 수용하는 것 같아요.
기자) 저도 여기서 배운 바느질 솜씨로 집에서 칭찬을 엄청 받았어요. 아내의 옷을 몇 번 줄여주다가 나중에 이웃집 옷도 줄여주 게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먹거리를 나눔하곤 했어요. 사소하지만 이웃과의 교류 증진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이 자리를 빌어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박 ) 저는 순환패션 동료 디자이너를 통해 일하는 방식, 자원활용 등 배울 점이 많아 좋았어요.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 측면, 소속감을 느끼게 해 준 것 등 다 좋았어요.
특히 다문화 여성 대상의 수업이 인상 깊어요. 이분들이 낯선 사회에 적응하려는 열정과 의지가 누구보다 강해서
더 열심히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그분들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어요.
향후에도 서대문50플러스센터가 지역사회와 연계해 다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그들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정착하도록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른 소외계층에도 마찬가지로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어요.
배 ) 저는 경단녀로 지내다가 다시 일하게 되어 너무 좋았어요. 수강생들에게 제가 아는 기술을 알려드릴 때마다 크게 반응을 보 이고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일하는 즐거움을 충분히 느꼈어요.
▲ 근무 중인 모습 ⓒ 시민기자단 이춘재 기자
기자) 네 분 모두 가지고 있는 꿈(계획)이 있으실 텐데 향후 무슨 일을 하실 건가요?
손 ) 저는 의상 경력을 살려 봉사활동도 하고 개인 공방을 운영하는 게 장래의 꿈이에요.
작품을 하나 만들면 그처럼 즐겁고 뿌듯한 게 없어요. 의상 제작하는 게 노후에 가질 저의 취미 겸 일이랍니다.
민 ) 저는 개인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키우고 싶어요. 그래서 휴면상태인 사업자를 다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 중입니다.
저의 커리어(네트워크, 노하우 등)를 살려 공유가치를 실현하는 데 힘쓰려고요. 함께 해서 더 멀리 가고 싶어요.
박 ) 본래의 직업인 무대 의상디자이너로 돌아가지 않을까 합니다만 결국 물리적 한계가 있을 겁니다.
본업에서 물러나면 컨설팅을 하는 등 계속 관련 업무에서 끈을 놓을 것 같지는 않아요.
여기서 경험한 업사이클링 개념을 본업에서도 더 확장하고 있거나 일상생활의 차원을 넘어 공적 차원의 업사이클링 기회가 있다면 적극 참여해 보고 싶어요. 그러다가 훗날엔 궁 해설사나 숲 해설사를 하고 있지 않을까? ㅎㅎㅎ.
배) 저는 내년에도 이 사업이 계속된다면 다시 지원하고 싶어요. 이 일이 제게 잘 맞는 것 같아요.
틈틈이 강의 준비도 하면서 또 다른 기회를 만들고 있는 저를 상상합니다.
기자) 모두 말씀들을 잘 하십니다. 혹시 서대문50플러스센터를 모르고 있거나 이용하는 동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마디 해 주세요.
모두 ) 몇 년을 일 없이 쉬어보니 ’일‘의 소중함을 알겠더군요. 집에만 계시지 말고 할 수 있으면 어떤 일이든 하라 권하고 싶어요.
나이 들어가면서 취미활동을 하더라도 뭔가 움직이며 몰입할 수 있는 게 꼭 필요해요.
남성 바느질 수업 때 장애를 가진 분이 한 분 계셨어요. 딸이 아버지 재활을 돕기위해 신청해 주었죠.
한쪽 몸에 마비가 와서 바느질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재활의지가 대단했어요.
마지막 수업 할 무렵에는 스스로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처럼 일단 집 밖으로 나오면 많은 고민들이 해결돼요.
네 분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친분이 있어 서먹한 자리가 아니기도 했지만 동년배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네 분과 함께 환경오염 문제, 다문화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 문제, 중년 일자리 등 오늘날 우리 사회의 굵직한 이슈들을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런 문제들도 머리를 맞대면 작은 해결책이라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았다. 그런 면에서 순환패션 디자이너와의 4인 4색 인터뷰는 성공적이었다. 네 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원하시는 꿈 모두 이루시기를 기원한다.
▲ 한 자리에 모여서 찰칵 (왼쪽부터 박소영, 배선희, 민경희, 손만순) ⓒ 시민기자단 이춘재 기자
시민기자단 이춘재 기자(grnll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