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플러스 세대들의 꿈, 여행을 즐기는 삶
50플러스 세대들에게 은퇴 후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한 가지 말해보라 하면, 보통 “여행을 다니면서…”라는 답이 돌아온다. 산업화 시대를 살며 근면 성실하게 일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에 몰입했던 50플러스 세대에게, 여행은 자유로움이라는 인간본능을 실현하게 하는 중요한 행위로서 그 가치가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생애전환기를 맞아 비로소 갖게 된 시간의 여유가 여행을 ‘여행답게’ 만들어가고 있고, 나아가 여행을 통해 다가오는 새로운 생애 단계를 준비하는 마음속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듯 중요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여행을 보다 의미 있게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것이 바람직한 여행문화 또는 여행 의식이다.
▲ 절영해안산책로 왼편으로 흰여울 문화예술마을이 이어진다.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여행지로서의 장소, 삶의 터전으로서의 장소
얼마 전 뉴스에서 유명 연예인이 제주도의 어느 조용한 마을에 카페를 오픈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자신이 커피매니아이고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작은 공간에서 직접 내린 커피와 직접 고른 음악을 들려주는 공간으로 운영하고자 했다고 밝혔지만,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이른 아침부터 입장을 위해 줄을 선 여행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일대 교통이 마비된 것이 보도되었다. 카페 주인은 이러한 혼란에 대해 사과하고, 카페 운영을 일시 중단하였으며 카페 이용을 예약제로 전환하는 등 대응조치를 밝혔다. SNS로 증폭된 여행지 쏠림현상이 유명인의 행위와 함께 어우러져 여행지를 터전으로 둔 현지인들의 삶에 혼란을 초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사례가 있다. 최근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한 팽나무가 있는 마을이 화제의 장소로 떠올랐고, 몰려드는 여행자들로 인해 마을 전체가 예상치 못한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 많은 식당과 카페들이 들어설 것으로 보이며, 수령이 500살 정도로 추정되는 팽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유명세로 인해 마을주민들은 혼란과 불편함을 한동안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행지는 여행자들의 입장에서는 잠시 새로움을 경험하기 위하여 스쳐 지나가는 장소이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삶의 터전이라는 점을 놓치기 쉽다. 즐거움을 누리고 경험을 얻기 위한 여행이 다른 이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을 방해하거나 훼손하는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도록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
▲ 흰여울 문화예술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벽화로 그려놓았다.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오버투어리즘 현상
여행은 여행자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게 경제적 측면,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분명한 긍정적 효과가 있다. 산업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경제적 부의 이동이 이루어지고 타문화를 경험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사회문화적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반면 여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 효과도 있다는 점 또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버투어리즘(over tourism)’이다. 여행자 증가에 따른 소음, 쓰레기, 교통, 환경, 물가상승 등 부정적 효과로 인해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열악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 현상을 말한다. 여행자의 인식 부족과 배려 없는 행동으로 인한 불쾌감 형성, 그리고 여행지의 갑작스러운 쏠림현상 등이 그 원인이다.
마을의 관광지화
오버투어리즘의 가장 대표적 형태가 현지인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들여다볼 수 있는 기존 마을을 관광지화한 곳들이다. 서울의 북촌한옥마을,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통영의 동파랑마을 등과 같이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관광지화한 경우다. 여행자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외부인들의 방문이 증가하게 되며 주민의 일상이 방해받게 되는 경우가 수시로 발생한다. 골목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집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주변 교통이 혼잡하게 되고 여행자들이 버리는 쓰레기가 주택가를 점령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기자가 여행한 부산지역의 ‘흰여울 문화예술마을’도 주민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가 관광지화된 마을이다. 이름도 아름다운 이 마을은 과거 피난민들이 삶의 터전을 잡은 곳으로, 영도 앞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바닷길 위 가파른 지형에 기대어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지어져 있다. 비가 오면 봉래산 기슭에서 골목을 따라 바다로 굽이쳐 내리는 물줄기가 마치 흰 개울물 같다고 하여 ‘흰여울마을’이라는 예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현재는 마을주민과 함께하는 문화 마을공동체로 낡은 가옥들을 리모델링하고 도시개발사업을 통해 독창적인 문화예술마을로 거듭났다. 이 마을은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가파른 언덕 위에 이어진 골목길로 인해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암수살인’, ‘사생결단’ 등의 영화촬영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영화기록관이 함께 있는 안내센터를 방문했다. 흰여울문화마을의 역사와 동네 풍경을 보여주는 흑백사진, 그리고 촬영된 영화 속 장면들이 전시된 작은 안내센터에는 여행자를 반갑게 맞아주는 해설사님이 계셨다. 공기업과 금융기관을 은퇴하고 부산 영도구청 소속으로 해설사 활동을 하고 계신 50플러스 세대였다.
▲ 흰여울 문화예술마을의 안내.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 마을 안내센터 내 전시되고 있는 영화 촬영 영상.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마을의 역사와 마을을 둘러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명소, 그리고 여행코스들을 설명해 주시는 모습에서 마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설명을 듣다가 현지 마을주민들이 여행자들로 인해 겪는 불편함은 없는지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바다 풍경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장소를 중심으로 관광객들의 동선이 이어지고 있어 위쪽에 위치한 현지인 거주 장소들은 다른 지역들에 비해 비교적 방해받지는 않고 있었다. 또한 현지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마을을 재구성하고 폐가를 리모델링하고 있고, 마을이 정비되는 과정을 자치단체와의 협의하에 진행함으로써 관광지화에 따른 상생 효과가 잘 발휘되는 듯 보였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의 아픈 역사와 시간의 흔적들을 간직한 소박한 풍경의 마을이, 현지 주민들의 삶이 비교적 방해받지 않고 아름다운 바다를 품은 마을로서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는 듯하여 가벼운 발걸음으로 안내센터를 나설 수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의 부산 흰여울 문화예술마을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내려다보며 이제 마을 곳곳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 평일이지만 휴가철이라 젊은 여행자들로 붐비는 마을 골목마다 파랗고 노랗고 연초록빛 등 환한 색감의 담장과 벽으로 둘러싸인 예쁜 카페와 작은 집들이 각각의 개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며 뜨거운 태양 아래 강렬하면서도 선명하게 마을 전체를 빛내고 있었다.
주민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도록 당부하는 안내문들을 발견할 수는 있었지만, 여행자들에게 불쾌감이나 위협감을 주지 않는 정도였다. 여행자들의 행동과 의식 수준도 높아진 것 같고 주민들과 여행자들의 상호 배려도 느낄 수 있었다.
▲ 마을 주택으로 연결되는 골목길.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더운 날씨에 걷느라 지친 몸도 쉬어갈 겸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카페 중 한 곳을 선택해 머물렀다. 아주 작은 하꼬방 규모의 카페였는데 아래층에는 커피를 내리는 설비들이 가득하고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아주 작은 공간에 의자와 테이블들이 오밀조밀 자리하고 있었다.
피난민들이 마을을 형성한 시기의 서민층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레트로한 느낌으로 되살아난 정감이 가는 장소였다.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았던 삶의 무게가 가득한 공간이었지만 허름한 창밖으로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애환을 달래면서 살아냈을 것이다. 이제는 이 공간이 젊은이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가득한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행복의 장소로 거듭난 것이다.
공간의 주인공들이 바뀐 이 작은 집이 오래도록 잘 보존되어 삶의 향기들을 켜켜이 담고 앞으로도 사람들을 맞이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여행자로서 문득 들었다. 가파른 계단 옆 공간에 자리한 화장실은 멋진 바다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창을 갖고 있었다. 예전에도 화장실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이 창문은 작은 집에 머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안겨주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 피난민들의 작은 집을 개조해 만든 카페에서 바라본 영도 앞바다.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흰여울 문화마을은 힘들었던 시대 서민들 삶의 정경과 아름다운 주변 바다 풍경을 멋지게 어우러지도록 재정비하여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소소한 행복을 전해주는 마을로 성공적으로 거듭난 것으로 보였다. 부디 현지 주민들의 행복을 해치지 않는 아름다운 문화예술마을로서의 소명을 잘 유지해가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아름다운 바닷길로 이어진 산책로를 걸어 되돌아오는 발걸음이 상쾌하고 가벼웠다.
▲ 밝은 색채로 아름답게 꾸며 놓은 흰여울마을 풍경.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모두가 행복한 여행자의 길
예의를 갖추고 겸손한 마음과 태도로 현지인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 잘 유지되도록 여행자로서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 여행자의 책무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 위해 하는 여행, 즉 우리가 행복한 여행자가 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은 여행지는 여행자들을 위해 존재하기 이전에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점, 현지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려 깊은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행지의 환경을 보호하고 현지 주민들과 현지 문화를 존중하며 소비가 정당한 경제적 대가로 이어지되 항상 겸손한 자세와 태도로서의 여행자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여행의 즐거움과 행복이 나만을 위해 누리는 행위가 되어서는 행복한 여행자가 될 수 없다. 50플러스 세대들이 여행지의 환경보호, 현지 문화의 존중, 여행지 경제에의 기여 등 함께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작은 배려와 의식 있는 여행문화를 가꾸어가는 주체가 되기를 기대한다.
과거 삶의 애환을 담은 마을, 현지 주민들의 삶이 평화로운 마을, 여행자들에게 감성 추억을 선사하는 마을… 우리 모두에게 행복한 여행자의 길을 함께 할 수 있는 여행이 지속되길 바래본다.
▲ 돌아오는 해안산책길, 피아노 계단.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silk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