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와 한류 문화의 융성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이 문장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국 영화가 상을 받는 일이 이제 더 이상 놀랍지 않을 만큼,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감독상, 주연상, 조연상을 수상한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고, ‘K-팝’이라고 불리며 세계 음악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은 세계 곳곳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고 있다. 또한 최근 OTT(인터넷 기반의 영화 및 드라마 구독 서비스)의 확장에도 한국의 드라마 시리즈가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한국인으로서의 문화적 자부심 한 가운데에 세계가 주목하는 한류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문화적 우수성의 뿌리를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겠지만,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적 발명이라 할 수 있는 한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말(언어)을 기록하는 문자 체계는 표현의 가장 기본적 도구로서, 생각을 담아내기도 하지만 나아가 생각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어 또는 문자 체계가 한 나라의 문화 또는 문화적 역량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할 것이다.
576돌 한글날을 맞아,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적 DNA의 뿌리(씨앗)가 되는 한글의 자랑스러움을 되새기고자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글박물관을 둘러보았다.
▲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 모음 창제의 철학적 배경인 하늘, 땅, 사람을 형상화한 건물이라고 한다.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위대한 발명, 한글에 관한 모든 것
웅장한 위용으로 자리한 국립중앙박물관 옆 조용히 자리한 국립한글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을 갈 때마다 언젠가는 꼭 가봐야겠다며 눈도장만 찍고는 했는데, 드디어 마음먹고 방문하게 되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민족 최고 문화유산인 한글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 다양한 한글 자료를 전시하고 연구함으로써 한글의 문화적 다양성과 미래가치를 보여주고자, 한글 전문 박물관으로서 2014년 10월 9일 문을 열었다.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을 비롯한 전시관 외에도 한글도서관과 휴게공간, 그리고 용산가족공원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복합 문화공간이다.
2층에 위치한 상설전시실은 전시해설 프로그램이 있어 해설사의 상세한 설명을 통해 전시물의 의미를 더 자세히 알고 살펴보며 이해할 수 있었다. 상설전시는 ‘훈민정음’의 머리말 문장에 따라 7개의 주제로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을 따라 문장의 의미를 되새기며 관련된 전시물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한글의 우수성과 오늘날 빛나는 우리 문화가 번성할 수 있었던 원인을 짚어보며 훈민정음에 새긴 천년의 문자계획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1443년 세종은 우리의 문자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1446년 새 문자를 만든 목적과 원리를 밝힌 ‘훈민정음’의 머리말에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통해 꿈꾼 새로운 세상이 설계돼 있다. 한글학회가 쉽게 풀어 쓴 훈민정음 머리글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에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 훈민정음 머리글을 박물관 초입 바닥에 한글 자음과 함께 적어 놓았다.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 한글과 관련된 귀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관 내부 모습.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애민정신에서 비롯된 한글 창제
세종대왕이 쓴 이 머리글 속에는 한국인의 소리와 말을 우리 글로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고 한자를 배우지 못한 일반 백성들이 편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함으로써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자를 만들고자 했다. 글자를 아는 것이 곧 권력이던 시절 세종의 한글 창제는 백성을 깊이 사랑하는 ‘애민정신’이 담겨 있는 문자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와 중국의 말이 다르기에 글자 또한 달라야 한다는 자주정신과 실생활에 쓰임이 있어야 한다는 실용정신을 바탕으로,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학자들로 하여금 한글을 만들게 했다.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는 ‘민족의 천년 미래를 위한 대업적을 만들어내는구나’라는 생각에 세종이라는 위대한 지도자를 둔 것은 우리 민족에게 더 없는 큰 행운이다.
▲ 한글의 창제 배경과 원리를 설명한 훈민정음 해례본.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한글 창제의 뜻에 따른 전시 공간
앞서 언급한 대로 상설전시실의 전시는 ‘훈민정음’ 머리말의 뜻에 따라 7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있다. 1부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2부 내 이를 딱하게 여겨, 3부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4부 쉽게 익혀, 5부 사람마다, 6부 날로 씀에, 7부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7개의 각 전시 공간은 그 뜻에 맞춰 구성되어있는데, 예를 들어 5부 ‘사람마다’ 섹션에는 각기 다른 계층의 사람들인 양반, 노비와 아녀자 등의 편지들이 전시되어 있고, 7부 ‘편안케 하고자’ 섹션에는 전염병 치료법을 지방에 내려보낼 때 쓰였던 알림문, 효율적인 농사법, 요리법 등이 적힌 한글 책자가 전시되어 있다.
‘훈민정음’은 본래 자음 글자 열일곱 개와 모음 글자 열한 개를 합한 스물여덟 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본래 스물여덟 자였지만,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은 모두 스물네 자이다. 글자가 나타내던 말소리가 사라지거나 잘 쓰이지 않게 됨에 따라 사라졌다. 이처럼 한글은 우리말의 쓰임에 따라 변화하고 계속 성장하는 글자다.
▲ 세종이 만든 한글은 본래 스물여덟 자였지만,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은 모두 스물네 자다.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모든 사람이 읽고 쓰는 세상을 바랐던 세종은 단순히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한글이 우리말을 적는 데 부족함이 없는지 살피기 위해 ‘용비어천가’를 만들고 이를 대상으로 어떤 표기체계가 편하고 정확한지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고민했다.
우리 문자 한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
한글은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김에 따라 위기의 시대를 맞이했으나, 한 민족의 정체성은 그 말과 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당대 지식인들은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한글에 대한 연구 및 교육 활동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켜낼 수 있었다. 오늘날 한글이 우리 일상에서 편하게 쓰이고 부족함이 없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문화적으로 성장하고 융성하게 되기까지는 세종대왕의 애민사상과 위기의 시대에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려는 지식인 등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독립신문은 1896년에 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으로 순 한글을 사용하였다.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빛나는 문화유산, 한글의 소중함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로 인해 소리는 있으나 글자가 없어 글로 통하기 어려웠던 시대에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그 어둠을 밝히고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기 시작했다. 즉 세종이 만든 쉽고 간편한 스물여덟 개의 글자는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에 깨우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는’ 배려와 소통의 문자다.
이러한 한글의 우수성은 현대에 이르러 그 빛을 더하고 있는데, 다른 문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소리가 많을 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그러다 보니 사물을 그려내는 단어의 수준 또한 깊고 다채롭다. 과거 르네상스 때 예술작품이 새로운 표현기법의 발견과 다양한 색감 그리고 사실적 묘사에 자리 잡아 꽃 피웠듯이, 한글이 갖는 문자 체계로서의 우수성은 한류 문화 콘텐츠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류 문화 융성의 또 하나의 중요한 기반은 세계 어느 나라도 견줄 수 없는 우리나라의 탁월한 인터넷 기반 환경이다. 과연 한글이라는 문자 체계 없이 우리가 ‘인터넷 강국’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한글을 만들고 지켜온 우리 선조들에게 다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알파벳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환경에서, 비알파벳 문자 체계 가운데 한글만큼 적응성이 훌륭한 문자 체계가 있을 수 있을까,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세계인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한류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라 독창적이고 과학적으로 창조된 한글 문자를 통해서 우리 고유의 정서와 문화를 글로 잘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한글은 문화민족으로서의 DNA를 보여주는 씨앗이자 뿌리라고 할 수 있다.
한글날이 다가오고 있다.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어여삐 여겨 한글을 창제했듯이 그 뜻을 잘 살려 우리의 글 한글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 곱게 써야 할 것이다. 작은 박물관이지만 한글의 소중함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안고 박물관 길을 나섰다.
▲ 우리나라 오랜 역사의 길을 밝힌 한글 창제의 의미를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 조형물. ©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50+시민기자단 강명주 기자 (silk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