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과 동행이 있는 디지털 전환을 바라며….
디지털 약자와의 동행은 결국, ‘사람’이 우선이다.
도대체 키오스크는 누가 만든 거야?
몇 년 전 허기를 달래기 위해 들어간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키오스크란 녀석을 처음으로 만난 나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계산대 앞 메뉴를 보고 골라서 직원에게 얘기하고 카드를 건네면 계산과 동시에 주문이 완료되고, 영수증 번호가 모니터에 뜨면 주문한 음식을 받아서 맛있게 먹으면 되는 간단한 절차였는데…. 키오스크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화면 위의 지시사항을 읽고, 터치하면서 원하는 메뉴를 일일이 찾아내서 세트인지 단품인지 결정하고, 음료도 고르며 곁들이 선택까지 오면 시험시간에 쫓기는 학생처럼 서서히 조바심이 생기다가 마침내, 결제 페이지를 만나면 마나님이 그렇게 강조하시는 통신사 할인이나 쿠폰 적용은 생각도 못 한 채 나 때문에 기다리는 뒷사람들의 눈총이 따가워 빨리 승인이 떨어지기만을 기도하는 내 모습이란….
요즘도 나는 키오스크 앞에 서면 디지털 시대의 부적응자가 된 듯해 서글퍼지고 왜 이런 요상한 기계들이 계산대를 막고 늘어선 건지…. 애꿎은 알바생을 불러 하소연하기 일쑤였다. 본의 아니게 꼰대가 된 셈이다.
키오스크, 나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
2023년 2월 국회 과학기술 방송통신위원회 ‘국내 키오스크 보급 현황(추정)’ 자료에 의하면 민간 분야에만 설치된 키오스크는 지난해 2만 6,574대로 2019년 8,587대에서 3배가량 증가했다. 반면에 서울디지털재단이 발표한 ‘2021년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층의 키오스크 이용률은 45.8%에 불과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고령자들의 경우 시력뿐만 아니라 인지 기능도 노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저하돼 좁은 공간에 시각 정보가 여러 개 있을 때 이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2017년 미국 앨라배마대학교 연구팀이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령층이 젊은 층보다 짧은 문장들을 읽어내는 속도가 약 30% 느린 것으로 나타났으며 글자를 인식하는데 필요한 자간도 31%나 더 넓어야 했다. 즉, 고령층이 정보를 읽어내는 속도도 느린데다 밀집되어있는 정보를 빠르게 해석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대부분의 키오스크 주문 방법이 기존의 점원(사람)을 통하는 것보다 더 많고 복잡한 절차를 거치도록 설계되어 있고 판매업체나 제작사, 취급 상품마다 메뉴 구성이 달라서 청년층까지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는 분 중에 기자처럼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웠다면 더는 실망하지 마시라, 그게 당연한 거다!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 디지털 약자와의 동행 정책이 우리를 돕는다.
한국소비자원이 2022년 9월에 발표한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 이용 실태조사’ 결과도 매우 흥미로웠는데, 키오스크 이용이 불편한 이유를 질문하자 ‘주문이 늦어지면 뒷사람 눈치가 보인다(52.8%)’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두 번째는 ‘메뉴 조작이 어려워서’ 46.8% 이어서 ‘기기가 잘 작동하지 않아서’ 39.1% 등의 순으로 집계되었다. 정이 많고 본인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하는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어디에서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인 현대 사회에서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나 때문에 기다린다며 뒷사람을 신경 쓰다니….
▲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키오스크 이용이 불편한 이유’ 〈출처 : 한국소비자원〉
그리고 키오스크 사용의 사회적 고충은 비단 우리 50플러스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들의 키오스크 접근성 역시 당사자들에겐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2019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발표한 '키오스크 정보 접근성 현황조사'에 따르면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이 휠체어에 앉아 조작할 수 있는 키오스크의 비율은 전체의 25.6%에 불과했으며, 2021년 실로암 장애인자립센터가 서울특별시의 공공과 민간 영역의 키오스크 설치 장소 245곳의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무려 50% 이상의 키오스크는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편리함과 경제성을 내세워 확산되고 있는 키오스크와 전산화의 이면에는 햄버거 한 조각, 음료수 한 모금 주문해서 마시기조차 어렵고 또 심리적 자존감마저 상실해가는 디지털 소외계층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한 서울특별시에서는 이러한 디지털 약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캠페인을 추진 중이다.
▲ 서울특별시의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캠페인 보도자료 ⓒ 서울시
다양한 동행 사업 중 기자가 특별히 공감하는 정책은 2022년 하반기부터 시작해 올 2월부터 제2기 활동으로 이어진 ‘디지털 안내사’다. 제1기 디지털 안내사는 어르신이 많은 174개 지점, 50개 노선을 순회하며 무려 53,620명에게 SNS, 기차표 예매, 길 찾기 앱 등 스마트폰 앱 및 디지털 기기 사용 등을 도와드렸으며 동시에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서울시민 안심 일자리’ 우수사례이기도 하다.
2023년에는 키오스크가 전 생활영역으로 확산함에 따라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집중적으로 도와드리기 위해 키오스크가 설치된 생활 현장 100개 지점을 신설하고, 디지털 안내사도 50명을 증원해 총 150명을 투입했다. 이들은 2인 1조로 9시 30분부터 16시 30분까지 서울역, 청량리역, 영등포역 등 기차역과 마트, 시장, 병원, 주민센터 등 지정된 노선을 순회 활동하는데, 50플러스 이상의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키오스크나 디지털 기기 사용에 어려움이 있는 서울시민은 누구나 주황색 모자와 조끼를 입은 ‘디지털 안내사’에게 다가가 문의와 도움 요청이 가능하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안내사들인가? 게다가 내 주변의 디지털 안내사 활동 상황에 관한 확인은 전화상담실(070-4640-2274)을 통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다고 하니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보자.
▲ 제2기 디지털 안내사 영등포구 활동 노선(안) ⓒ 영등포구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마음이 있는 디지털 시대와의 공존….
취재를 진행하면서 본 기자가 주장하고 싶은 점에 대한 자료도 한국소비자원의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 이용 실태조사’ 결과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연령대별 키오스크 사용 선호도를 문의한 지점이었는데, 3년간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 두기와 비대면 소비 동향 확산에 따라 20대∼40대는 비대면 거래를 더 선호했고, 50대는 47% 대 53%로 비대면이 근소하게 앞섰으며 60대 이상은 62%가 대면 거래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에게는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라고 사용법을 교육만 하기보다 50플러스 세대들에게 디지털 안내사 제도와 전용 취업 업장을 확대하는 것은 어떨까? 공감도가 높은 동년배끼리 편하게 응대하며 관련 문의와 도움을 받으면 그것이 디지털 약자를 위한 ‘배려’나 ‘교육’하는 차원만이 아니라, 함께 ‘동행’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연령대별 키오스크 사용 선호도’ 〈출처 : 한국소비자원〉
기자가 올해 초 일본 오사카에 갔을 때 일을 예로 들고자 한다. 현지 일정이 빠듯해 간단하게 햄버거로 때우려고 들른, 오사카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글로벌 브랜드의 패스트푸드점에는 키오스크 기계가 한 대도 없었다, 점원이 직접 주문받는 창구도 하나여서 긴 줄로 서서 기다려야 했지만 불평하는 사람도 없었다. 더 놀라웠던 건 주문과 결제를 마치니 번호가 적힌 아크릴판을 주며 테이블에 앉아있으면 직원이 음식을 가져다준다는 것이었다. 이 넓은 매장에서 과연 내 자리를 잘 찾아올까 싶었는데, 잠시 후, 70대로 보이는 어르신 점원이 내가 주문한 메뉴 트레이를 조심스럽게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패스트푸드였지만 그리고 타국이었지만 나보다 더 연세 있는 분의 서빙을 그냥 앉아서 받기에는 송구해서 내 번호를 보이며 냉큼 일어나 두 손으로 받으니 그분도 당황해하며 ‘감사하다’, ‘잘 먹고 여행도 잘하기를 바란다’라며 웃어 보였다. 그렇게 마음 따뜻함을 느끼며 패스트푸드를 먹은 적이 얼마만인지…. 키오스크로 결제하고, 모니터로 번호를 기다리거나 진동벨 호출로 음식을 주고받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디지털 시대에는 ‘속도’와 ‘편리함’은 있겠지만, 사람 사이의 따뜻함은 기대할 수 없다.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를 거부하거나 늦추자는 얘기가 아니다. 디지털 소외계층이나 기자와 같은 느림보들에게 디지털 역량을 강화해 주는 교육과 정책도 필요하겠지만, 디지털 안내사나 시니어 크루와 같이 얼굴을 마주하며 정겨운 대화와 따뜻한 손길이 오가는 사람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온도감 있는 ‘디지털 동행’ 정책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시민기자단 김기연 기자(vpos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