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김유정!

                                                                                                정 규 동

 

  상봉행 경춘 열차가 느리게 다가왔다떡시루 같이 생긴 실레마을위로 오후의 햇살이 넘어가고 있었다유정이 잘 가라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김유정 문학기행 날짜가 공지됐다그의 향기를 꼭 맡고 싶었다작가도전반 김혜주 선생이 사전에 공개한 십여편의 소설들을 꼼꼼히 읽었다대문호에 대한 예우였다. ‘동백꽃과 봄봄에서는 페이소스가 깃든 해학이 넘쳤고, ‘소낙비와 따라지에서는 작중 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화처럼 묘사했다. ‘금따는 콩밭과 노다지’, ‘두꺼비는 각각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한 듯 보였고, ‘만무방과 땡볕에서는 도시와 농촌 하층민들의 신산한 삶을 그렸다.

 

  몇 개의 산과 강을 건너 경춘 열차는 달렸다차창 밖은 알록달록한 수채화였다알싸한 생강나무 꽃의 내음이 콧속으로 파고드는 듯 했다서울의 먼지를 털어낸 열차는 푸르르 하고 김유정역에 멈췄다애끓는 삶으로 가득했던 유정의 소설과는 달리 새로 단장한 역은 말끔했다탐욕에 눈멀었던 이 주사가 기부를 했을까

  영등포50플러스센터 작가도전반 문우들과 만나 김유정 문학촌으로 발길을 재촉했다표지판 건너편으로 옛모습의 역사와 빛바랜 열차가 이곳이 실레마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문학촌 매표소 가는 길 오른쪽으로는 독서하고 있는 유정의 전신상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고 덕돌이와 홀어미가 있을 것 같은 이엉지붕을 얹은 초가집들이 현대식으로 앉아 있었다.

 

  김유정 문학촌이라 씌여진 대문을 지나 기념전시관으로 향했다회화작품들사진과 서한 등이 유정의 생애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었다유정이 누이와 찍은 희미한 사진 속에서 입술을 앙 문 아키코가 오버랩됐다

망할년이 담에 봐라내 장독 위에 오줌까지 깔길 테니!”

  ㅁ자 형태로 복원된 생가 대청마루에 앉아 잠시 유정을 회상했다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던 시대적 빈곤가진 자의 횡포와 착취를 말하고자 했던 그병마와 싸우면서도 소설은 유머러스했고여성이 아님에도 그들의 심리를 세심하게 묘사했다도시에서 자라났으면서도 농촌의 삶을 청국장처럼 끓여냈다생가 옆에서는 점순이가 닭쌈을 시키고 있었는데 그 눈깔이 꼭 여우새끼 같았다.

 

  문학촌 대문을 나와 맞은 편 김유정이야기집으로 발길을 옮겼다청색기와로 곱게 단장한 집은 유정의 문학을 다차원의 매체로 구현해낸 전시관이었다전시실에서는 원초적이고 야성적인 기층민들의 언어를 사용한 유정의 작품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훔척훔척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중국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을 비롯한 세계적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유정에 찬사를 보냈다영상실 에서는 애니메이션 봄봄이 상영되고 있었다.

밤낮 일만 하다 말 텐가!”

그럼 어떡해?”

성례시켜 달라지 뭘 어떡해.” 하고 되알지게 쏘아붙이고 얼굴이 발개진 점순이가 산으로 도망질을 쳤다.

 

  아래 쪽 낭만누리 기획전시실로 향하는 길목에는 화사한 봄꽃들이 산들거리고 있었다벗 안회남에게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라고 죽기 전 편지한 유정을 그리워 하듯이.

  기획전시실에서는 유정의 동화작품들이 은은하게 숨쉬고 있었다살아생전에 완성하지 못했던 두포전이 번듯하게 걸려있는 걸 보면 유정도 외롭지는 않을 것이었다낭만누리관 옆 혜성처럼 나타나 무지개처럼 사라진영원한 청년작가 김유정!’의 동상에 다시 섰다천국에서는 사랑이 맺어지길병 없는 다음 세상을 살길.

 

  문우들과 점심을 하러 가는 길금병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퐁!!쪼록퐁!하고 야릇하게도 음률을 읊고 있었다실레마을은 봄봄이었다.

 

  열차에 올랐다만원이었다궁금했다점순이의 키는 커졌을라나산골나그네와 병든 남편은 어찌 되었을까비에 쪼르륵 젖은 춘호처는 이 주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을까?

 

  잊을 수 없는 인생 추억을 만들어 주신 영등포50플러스센터의 배려와 작가 김혜주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20230427_11151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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