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을 만나러 가는 길
배영복
4월의 끝자락에 작가 김유정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은 인생의 쉼표다. 용산역 플랫폼에서 춘천 방향의 청춘열차를 기다린다. 입꼬리가 환하게 올라가고 마음이 먼저 기차를 타고 청춘의 시간으로 달린다. 기차 여행은 늘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처음 타보는 ITX 기차 2층에서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푸른 산과 연둣빛 들판이 다가왔다가 멀어진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송사리 떼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춘천 실레마을로 향한다.
김유정의 작품 <봄·봄〉, <동백꽃〉, <산골〉 등등 그가 쓴 소설 속 인물들이 나의 마음과 생각을 무시로 드나든다. 100년이라는 시공간을 넘어 유정과 교류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것은 문학의 힘일 것이다. 그가 살았던 세상이나 지금이나 삶의 양상과 형태는 많이 달라졌지만, 희로애락의 본질이 같아서 인지도 모른다. 김유정의 문학은 희화화된 인간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기에 시대가 지나도 공감 가는 부분이 있다.
김유정역에 내렸다. 따사로운 봄볕이 역 광장에 가득 쏟아져 내렸다. 영등포50플러스센터의 대표적 랜드마크 강좌 ‘작가도전반’ 문우들을 만났다.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소풍 분위기를 한껏 즐기는듯했다. 강의실에서 보았던 과묵한 모습과는 달리 모두 문학 소년, 소녀로 돌아간 듯 환한 얼굴이었다. 문학기행을 기획하고 인도한 김혜주 작가와 22명의 문우들이 김유정역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김유정역 바로 옆에 자리한 구(舊) 김유정(신남)역은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또 하나의 구경거리를 제공하였다. 여러 포토 존은 나의 카메라를 바쁘게 만들었다. 예전 역사는 과거 그대로 재연되어 교실에는 도시락을 데우던 큰 난로가 놓여 있고, 각가지 과거의 조형물과 기념물과 각가지 글들은 내 마음의 그리움을 소환했다. 과거 철도에는 그 시절 열차가 놓여 있었다. 주변에는 계절 꽃들로 장식되어 있어서 더욱 아름다움을 더했다. 우리는 휴대폰과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대며 추억의 순간들을 수놓았다.
문학촌은 여러 건물이 한 단지를 이루고 있는 형태였다. 멀리 김유정 선생의 동상이 보였다. 20대 청년의 모습이었다. 스물아홉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유정의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정의 두루마기 자락이 봄바람에 나부꼈다. 실레마을에는 생강나무(동백꽃) 잎은 봄봄의 따뜻한 입김에 사라진 지 오래되고, 그 옆에는 유정의 아픔을 연상시키는 철쭉, 영산홍이 붉디붉게 피어있어 그리움을 더했다.
생가의 앞마당에 들어섰다.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점순이가 닭싸움시키는 동상이 익살스럽게 우리 일행을 반긴다. 일주일간 읽었던 사건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곳 안에 있는 김유정 기념전시관에는 선생의 생애를 생생하게 그려낸 회화 작품들, 사진과 서한 등의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있었다. 내용 하나하나를 가슴으로 읽고 있노라니 유정의 문학적 삶이 더욱 마음으로 가깝게 느껴졌다. 그가 암울하게 살았던 그 시대가 추스를 수 없는 연민으로 다가왔다.
기념전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문학을 다차원의 매체로 구현해 낸 전시관이었다. 김유정 탄생 100주년 기념하여 세계 문인들이 남긴 작품 평과 손바닥 조형물에 눈길이 머물렀다. 영상실에는 유정의 작품 <봄·봄〉, <동백꽃〉 애니메이션이 상영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좌석에 앉아 점순이가 닭싸움을 시키는 것과 주인공 두 사람이 순식간에 넘어지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장면 등을 끝으로 일어서며 슬픈 현실 속에서도 사랑을 꽃피우는 유정 문학의 백미를 느껴보았다.
맛난 점심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며 식당으로 향했다. 목각 조형물의 익살스러운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앞뜰에는 분홍, 하얀 영산홍이 무리 지어 환하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인원이 많다 보니 천천히 순서대로 음식이 나왔다. 테이블별로 즐거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코다리 구이로 즐거운 식사를 마쳤다.
이것으로 일정이 끝나는가 했는데, 양윤선 회장과 강숙희 총무가 히든카드가 있다며 환한 웃음을 띠며 하는 말에 기대가 하늘을 찔렀다. 멋진 카페로 출발했다.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비탈진 오르막 비포장도로 위를 걸었다. 들녘에는 애기똥풀 등의 야생화들이 간간이 피어있어 화사한 날을 더욱 빛내 주었다.
실레마을 언덕 위에 우리가 생각 한 것보다 더 크고 멋진 카페가 있었다. 넓은 잔디밭에는 테이블과 조형물, 패랭이, 카네이션 등의 꽃이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카페에 놓인 책을 보는 순간, 종일 책 읽으며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 지붕이 있는 야외에 잔디 정원에 의자를 배치하고 문우 22명이 앉았다. 따사로운 햇볕, 상큼한 공기, 푸르고 아름다운 정원, 차 한 잔의 여유로움, 다정한 사람들의 환한 얼굴, 이 자체로도 힐링이 되었다. 김혜주 작가님은 이 시간을 유익한 시간으로 만들었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인도하였고, 문우들은 열린 마음으로 진솔한 대화와 재미있는 일화들을 나누었다. 그중에서 인상 깊은 것은 한 문우가 강의실에 못 한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는데, 김 작가님은 그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을 위해 옆에 있는 선배들의 입을 통해 경험을 공유하였다. 매일 지정 시간대에 일정량 글쓰기,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어보기, 일단 쓰고 난 다음에 구성이나 멋진 글로 다듬어 보기, 누구나 처음은 어렵게 느껴지는 현상, 글 합평의 비판 수용하기 등의 공감 가는 다양한 경험담이 소개되었다.
김유정을 만나러 갔던 길을 되돌아 걸어 나오며 생각에 잠긴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방편 중의 하나가 문학이다. 문학은 나와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크고 작은 나와 이웃의 상처를 치유하는 해독제가 아닐까. 문학기행을 하면서 우리는 진정한 문학의 세계로 다가가길 원하는지도 모른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푸르른 산도, 강물도 여전하고 100년 전의 청청한 유정의 모습도 그대로다. 시공간을 거슬러 찾은 실레마을에는 당장이라도 점순이가 쫓아 나올 것 같다. 푸른 숲을 헤치고 멀리 용산행 열차가 철로로 들어오고 있다. 유정의 소설 문장을 읊조리며 나는 기차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