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50플러스센터에서 2022 사회공헌활동으로 작은 도서실을 운영하고 계신 북 코디네이터 선생님들의 독후감을 나눕니다. 소개된 책은 센터에 오시면 대출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센터 내 작은 도서실에는 5060세대를 위해 준비한 1,592권(2022년 9월 초 기준)의 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대문50플러스센터 회원은 누구나 1일 2권씩 2주간 책을 빌릴 수 있습니다.
『플라멩코 추는 남자』 / 허태연 지음 / 2021년 / 다산책방 펴냄
은퇴를 앞둔 남훈 씨는 분신 같은 굴착기를 대여해 주고, 젊은 시절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때 작성한 ‘청년일지’를 들척이기 시작한다. 그는 일지에 적은 계획에 따라 깔끔하고 단정하며 지적인 노후를 보내기 위해 옷 정리를 하고, 스페인어 학습을 시작하며 체력단련을 위해 플라멩코 강좌에 등록한다. 그렇게 삶을 돌아보면서 그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를 정리하고자 전처와 낳은 딸을 찾는다. 그리고
딸과 함께 한 스페인 여행.
사람에게 가장 큰 위안을 주는 것도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도 가족이라고 했던가. 이런 애증 관계임에도 가족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따뜻함이 제일 깊이 녹아 들어간 삶의 본체일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따스함이 더해져 활활 타오르든 아니면 무엇인가에 의해 식어 가든, 가족은 전쟁과 다름없는 세상에서 시달린 후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고향임에 틀림없다.
플라멩코 추는 남자 남훈 씨는 두 딸에게 그런 따뜻함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혼 후 돌보지 않았던 딸과 스페인 여행을 가고 재혼해서 낳은 딸과 열애 중인 혼혈 스페인어 강사를 받아 들이면서. 그 강사가 하필 남훈 씨가 다니는 스페인어 학원 강사라는 게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은 들지만.
누구나 어떤 삶이든 그건 한 편의 이야기이다. 남훈 씨처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는 과거를 가진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가족이란 때로 일생 풀지 못할 갈등을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지기도 하니까ᆢ.
글 황은아 북 코디네이터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 김서령 지음 / 2019년 / 푸른역사 펴냄
지인의 강력한 소개로 2018년 병환으로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김서령 작가의 책을 읽었다. 김서령은 칼럼니스트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책머리에 소개된 바와 같이 남의 이야기 듣기를 즐기고 천생 이야기꾼이었던 그는 특히 인터뷰 칼럼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화려하지 않아도 가장 적절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마침맞게 문장을 풀어내는 그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주변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작가의 품성이 배어 있는 글이기에 더욱 공감이 가고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이 책의 장점은 작가가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단어들이다. 김서령의 본가인 안동 지방 방언뿐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의 변화에 따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에서부터 맛깔나게 수식하는 형용사, 부사 그리고 표현들을 보면서 메모를 해 놓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아니, 이 책 자체가 단어의 보고라고 생각돼 소장하고 싶은 책이 되었다. 특히 배추적과 갈치구이를 가지고 ‘깊은 맛’과 ‘얕은맛’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며 미소 짓게 되었다.
〈김서령이 남긴 ‘조선 엄마의 레시피’〉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서 처음에는 요리책인가 생각했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지난 시절 우리 어머니들이 부엌에서 오며 가며 딸들에게 일러주었을 법한 요리법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 책은 ‘레시피’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 방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엄마가 생각나고 고향이 생각나고 기억에 가물가물한 유년 시절 나의 모습이 오버랩 되며 평안하고 행복한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다.
책 한 권쯤이 대수로울 것은 없지만 그 책이 내게 끼친 파장을 생각하면 이건 사소하게 넘길 일이 분명 아니다. 그 책은 내게 어릴 적 기억들로 향하는 통로를 열어주는 일종의 로드맵이었다._『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본문 196쪽에서.
본문에 언급된 작가의 고백을 되새기고 싶다. 이 책은 나에게 어릴 적 기억들로 향하는 통로를 열어주었고 그렇게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의식 아래 가라앉아 있었던 사건들, 그때 꼬마였던 나의 행동과 생각들 그리고 엄마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 책에서 언급된 음식과 함께 어린 시절을 추억하다 보니 2년을 꼬박 거동을 못 하며 힘들어하시다 가신 엄마의 모습 대신 젊고 아름답고 활기에 넘쳤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글 최윤정 북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