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11월 20일(금) 센터 작은도서관에서 열린 사회공헌활동가 북 코디네이터들의 책 모임 <빨간 머리 앤을 추억하며> 후기를 나눕니다.
책 모임을 진행하겠다고 덜컥 신청하고는 걱정이 되었다. 처음 접해보는 일이라 호기심, 설렘, 책임감 등 마음속에 여러 감정이 자리했다. 나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원작과 백영옥 에세이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이라는 책 두 권을 가지고 서대문 50센터 작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전날 비가 온 탓인지 다소 쌀쌀하고 바람도 좀 부는 스산한 초겨울 날씨지만 책 모임을 하기에는 적합한 날인 듯했다. 서가에 있는 의자는 거리 두기 때문에 널찍이 띄워 놓았다. 탁자에 놓인 빵 한 조각과 유자차와 커피의 상큼하고 익숙한 향이 코로나19 여파로 굳어진 분위기를 살짝 녹여 주었다. 네 명의 참가자들과 서로 인사를 나눈 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텔레비전 만화영화로도 유명했던 ‘주근깨 빨강 머리 앤’이라는 주제곡을 들으며 모임을 시작했다.
빨간머리 앤 책 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최우용 북 코디네이터
이 책은 작가 자신을 닮은 캐릭터 앤의 이야기이다. 프린세스 에드워드 섬의 작은 시골 마을 에이번리에 사는 메슈와 마릴라 커스버트 남매는 농장 일을 거들 남자아이를 입양하려 하지만 착오가 생겨 열한 살 고아 소녀 앤 셜리를 맡아 키우게 된다. 처음부터 우여곡절을 겪은 앤은 초록 지붕 집 다락방에서 아름다운 사과나무와 자작나무들로 어우러진 이곳에서 상상력을 키우며 성장하게 된다. 저자의 삶이 투영된 책에서 앤의 외로움은 작가 자신의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도 밝고 꿋꿋하게 자라 유능한 숙녀가 되는 앤 셜리의 인생은 작가 몽고메리와 닮았다.
함께 진행자로 참여한 강성자 님은 책 속에서 인상적인 구절들을 소개하며 질문을 던졌다. 빼빼 마르고 못생긴 아이, 게다가 머리는 홍당무처럼 빨갛다고 한 린드 부인에게 앤은 화를 낸다. 앤의 빨간 머리처럼 누구에게나 어린시절 자신만의 콤플렉스가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 어릴 때 유난히 코가 커서 놀림을 받았다는 ○○님, 생활통지표에 늘 ‘명랑, 쾌활’로 써 있는 게 말괄량이라고 꾸짖는 것 같아 상처였다는 ○○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또 앤이 다이애나에게 한 말 중에 “내 안에는 앤이 여러 명 있나 봐. 가끔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사고뭉치가 됐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만약 내 안에 내가 한 명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편했을 거야. 재미는 절반도 안 됐겠지만.”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에 대한 느낌을 나누는 과정에서 ○○님이 낭독한 이시영 님의 ‘나의 나’라는 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앉아 있는 나를 나의 전부로 보지 마. / 나는 저녁이면 돌아가 단란한 밥상머리에 앉을 수 있는 / 나일 수도 있고 / 여름이면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날아가 / 몇 날 며칠을 광포한 모래바람과 싸울 수 있는 / 나일 수도 있고 …(중략)/ 여기에 이렇듯 얌전히 앉아 있는 나를 / 나의 전부로 보지 마. _ 이시영 시 ‘나의 나’ 중에서(2012년, 창작과비평사 출간 시집『사이』에 수록)
사과나무 앞에서 눈처럼 하얗고 향기로운 꽃들이 차양처럼 길게 드리워진 아름다운 광경에 설레는 앤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언제 설레는지’에 대해서도 서로 나누었다. ○○님은 새로 나온 신상 문구류를 대할 때라고 했다. 그래서 전시를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문구를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겨울에 가장 잘 보인다는 오리온 별자리를 볼 생각에 추위가 다가오는 계절이 설렌다는 ○○님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책 모임을 이끄는 데 아직 나에게 서툰 점이 많이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읽어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비록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고 한자리에 있었지만 마음은 좀 더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자신이 없어 망설여지더라도 일단 한 번 시도해 보는 것이 좋겠다.
앤이 말한다.
“아주머니, 내일을 생각하면 기분 좋지 않나요? 내일은 아직 아무 실수도 저지르지 않은 새로운 날이잖아요.”
“내 보증하마. 넌 내일도 실수를 수두룩이 저지를 거다.”
“맞아요. 그래도 아주머니, 제게도 장점이 하나 있는데, 알고 계세요? 전 같은 실수는 두 번 저지르지 않아요.”
글 최우용 서대문50플러스센터 북 코디네이터